독서 후기

안도현의 "연어"를 읽고...

깃또리 2004. 5. 31. 20:57
 

안도현의 "연어"를 읽고...

문학동네

안도현 지음

2004. 3.

 

 

 

 "세월이 쏜살 같다"라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왜냐면 "연어"를 처음 읽었던 일이 어제 같은데

손꼽아 보니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그 당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있어서 남들 따라 덩달아 읽었던 것 같아서 인지 내용도 희미하고 별로 기억 나는게 없었으나 이번에는 시간에 여유도 있고 조용히 차분히 읽어서 인지 그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의 입장과 심리적 상태에 따라 책에서 받는 느낌과 감동이 달라지는게 분명하다.

 

 책머리에 시인 안도현은 낚시 전문지에 기고한 짧은 글로 인해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린 경험을 적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이 서로 이해관계가 제 각각이고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똑 같은 내용을 읽고도 그 반응이 천차만별이고 경우에 따라선 엉뚱한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더구나 요즘엔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자기 표현이 쉽다 보니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 의사소통은 빠르나 좀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생각하는 자세엔 아무래도 뒤떨어지는 듯하여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평범한 다른 연어와 달리 몸 전체가 은빛인 주인공 은빛연어가 넓은 바다에서 모천회기 생태에 따라 험한 여정을 통해 자기가 태어난 강 상류에 도착하여 산란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을 연어의 입을 빌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진리를 우화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즉, 남을 이해하는 방법, 사랑의 의미, 도전정신, 자연환경과 인간등을 은빛연어와 강 그리고 어린 사람 을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드러내고 있다.

 

 먼저 연어를 완전히 이해하는 방법 즉, 인간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은 위에서 내려다 보지 말고 옆에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위치로 내려와 대등한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진정한 이해의 길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또 "상상력은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하는 힘" 이라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첫 입맞춤이 뜨겁고 달콤한 것은 그 이전의 두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 직전까지의 상상력 때문" 이라고도 하였다.

 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상상력이란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주인이 되게한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가 한다. 즉 인간의 상상력은 첫 입맞춤의 달콤함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무한한 꿈의 결집으로 이세상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연어 떼들이 거친바다를 지나 초록강에 들어서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폭포와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모든 힘을 다 쏟아 폭포를 뛰어 오르자는 무리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도로 쉽게 폭포를 넘자고 하는 무리로 나뉘어 격렬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데 마지막에 은빛연어가 조용히 나서서 폭포를 뛰어 오르자고 제안한다.

 눈 앞의 고난을 회피하고 쉬운 길을 택하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수 만년 이어질 연어의 험난한 미래에 적응력을 키우지 못하고 결국 생명력을 잃게 된다고 주장하여 결국 모두 은빛연어를 따라 폭포를 뛰어오른다.

 수 많은 어려움을 견딘 연어들은 이제 반짝이는 자갈이 바닥이 깔린 한가로운 초록강 상류에 이르게 되는데 인간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난관에 피하기만 하면 마침내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하여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다소 교훈적인 내용이다.

 이 책에서 은빛연어는 숫연어로 그리고 눈맑은연어는 암컷연어로 묘사되었는데 은빛연어는 하늘에 떠 있는 별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몸을 물 밖에 드러내 지상을 동경하기도 하는등 조금은 이상에 치우쳐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이때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에게 말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나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야." 라고 나직히 말하며  방황하는 은빛연어에게 눈맑은연어의 꾸준히 속삭임에 마침내 은빛연어는 사랑에 눈을 뜨고 두 연어는 몸의 색깔이 변해가는데 이 부분은 작가가 백과사전과 어류도감등을 섭렵하여 연어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았다는 얘기이다.

 즉, 대부분 물고기들은 배란과 정액 배출이 가까워 오면 몸통의 색이 바뀌어 지는데 소위 "혼인색"을 띠게 되는데 작가는 시인답게

 "우리는 사랑에 빠진거야."

 "사랑이라구? 그러면 나쁜 병이 아니로구나, 붉은 얼룩이, 하하하."라고 이 부분을 처리하여 읽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또 작가는 은빛연어의 입을 통해 인간은 카메라를 든 사람과 낚시를 든 사람으로 나누기도 한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연어를 이해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낚시를 든 사람은 연어를 잡는데 열중하고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강가에서 카메라를 들고 온 아버지를 따라온 어린인간(어린이)과 만나 얘기도 나눈다.

 사진작가를 아버지로 둔 어린인간을 부러워 하자 어린인간은 은빛연어에게 강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알려주고 헤어진다.

 드디어 강은 작은 시내로 변하고 흐르는 물길을 터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묵묵히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바위돌을 지나치며 자신의 가벼운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목적지에 도달한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처음엔 지느러미로 나중엔 몸통과 주둥이까지 동원하여 알 낳은 자리를 마련하느라 너덜너덜해져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먼저 눈맑은연어가 묻는다.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아냈니?"

은빛연어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그는 알을 낳는 일보다 더 소중한 삶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그가 찾으려고 헤맸던 삶의 의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다른 연어처럼 강을 거슬러오르면서 강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폭포를 뛰어넘었고, 이제 상류의 끝에 다다랐을 뿐이다.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너는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희망이라는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은빛연어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눈맑은연어는 은빛연어가 그 동안 어느 먼 곳을 여행하다가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연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지개를 잡으러 떠났다가 이제 한 마리의 연어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눈맑은연어는 그의 마음의 방황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꼽만한 희망도 호기심도 없이 살아가는 연어들에 비하면, 은빛연어는 훨씬 아름다운 연어다. 은빛연어가 왜 강물 밖을 자꾸 보고 싶어했는지, 왜 마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자 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