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읽고...

깃또리 2004. 5. 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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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2003. 11.16.

 

 

 

 

곽재구 시인은 "사평역에서"란 시로 알고 있었으나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온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읽고 곽 시인의 글이 마음에 들어 다시 포구기행을 찾아 읽어보았다. 사실 포구기행은 2002년에 발간되었고 예술기행은 올해 출판되었으니 순서를 바꿔서 읽는 셈이다. 포구기행은 곽시인이 전문 사진작가와 함께 우리나라 각지 주로 남해와 동해의 섬과 포구를 찾아다니면서 쓴 여행 산문집이다. 곽재구 시인은 전남 광주출신으로 청년기에 전라남도 남해안 포구를 수 없이 들락거렸고 전경 시절엔 남해 이름 없는 포굿가에서 근무하기도 하여 더욱 수많은 추억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제주도를 십여 회 건너가 해안지대를 샅샅이 누비고 돌아다녀 기행문 상당 부분이 제주도 포구에 할애하고 있다.


책은 25개 장의 포구기행으로 나뉘어 졌는데 각 장마다 페이지 양면을 이용하여 관련사진을 크게 실어 곽 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함께 포구기행을 다니는 느낌을 주는듯하였다.  마침 나도 얼마전 제주도 해안을 따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곳저곳 한가하게 돌아다닌 지가 오래되지 않아 곽 시인의 글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전해온다.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경우엔 쉽게 친해지기 마련인데 시인이 다닌 여러 포구가 마침 나도 다녔던 곳이어서 더욱 느낌이 선명하기도 하다. 곽 시인이 들른 선유도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이 섬은 전라북도 군산 선착장에서 배로 30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데 나도 지금부터 15년 전에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로 가 좋은 추억이 있다.


나는 가기 전에는 막연히 선유도라하여 선녀가 놀던 곳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 섬의 봉우리 두 개가 마치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형상이라 선유도라 이름 붙었고 여러 섬을 아울러 고군산군도라 하는데 원래는 군산도 였으나 나중에 고가 붙어 지금에 이르렀다는데 선유도를 비롯하여 장자도, 무녀도, 횡경도,  말도, 횡경도등 유인도와 닭섬 등 무인도까지 여러 섬이 모여 있는 군도였다. 선유도에 가면 잠 잘 숙소가 어떻게 될 줄 알았는데 가는 배안에서 알아보니 이미 민박도 동이 나 잠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낭패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 방이 비어 있으니 빌려주겠다고 하였다. 이 얘기를 곁에서 듣던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아가씨 넷도 함께 부탁하여 일행이 되었다. 선유도 선착장에 내리니 아주머니가 자기 집은 선유도가 원래 두개의 섬이었는데 사구로 이어진 반대편 저 쪽 끝으로 한 시간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마침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기도 하여 전화로 부르면 재빠르게 온다는 콜보트를 타고 가기로 결정하였다. 아니다 다를까 전화를 하니 석양 저 편에서 물살을 헤치며 작은 보트가 우리를 향해 왔고 우리 가족을 포함 일행 아홉 명이 승선하자 작은 배는 많은 인원의 무게에 선채를 반쯤 바다 물속에 잠그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이글거리는 붉은 햇덩이가 서서히 바다에 잠겨가는 모습을 뱃전에서 바라 보는 장려한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나는 그 모습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과 같이 민박을 정한 처녀들 넷과 민박집 마루에 앉아 있는데 동네 총각 네명이 수박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일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동네 앞 바위에 건너가자고 제안하였다. 내가 보기에 동네 총각들은 서울에서 온 처녀들과 놀고 싶어 나를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또한 처녀들도 자기들끼리만 총각들 따라가기도 뭐해서 나를 끼어 들이는 눈치였다. 이래 저래 내가 합세 하기로 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임시로 만든 땟스티로플 배를 가지고 동네 총각들이 들이닥쳤다.


얼마간 지나 바닷물이 빠지자 총각들 말대로 동네 앞바다 저 멀찍 암치 검은 바위의 암초가 드러나고 총각들이 스티로폼에 올라앉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헤엄쳐 가면서 끌고 갔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 암초까지 여러 번 왕복하여 우리는 모두 바위에 닿았고 지천으로 깔린 해삼과 소라 등을 따서 먹기도 하고 놀았다.  

물론 우리를 건네 준 총각들은 기진맥진한 눈치였다. 아무튼 그 친구들 덕분에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을 하였고 오후엔 동네 바로 뒤 작은 언덕을 넘자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바닷가가 나타났는데 해수욕객도 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우리들만의 세상을 만난 듯 호사를 만끽하였다.


다음 해에도 또 가려고 했으나 가지 못하고 그다음 해에도 가려고 마음먹었으나 이래저래 그다음엔 한 번도 더 가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는데 곽 시인이 선유도에 대한 얘기를 쓴 걸 읽고 눈을 감고 그 당시를 즐겁게 회상해본다.

 

 

책에 나온 시인 곽재구의 답사 섬과 포구

 

겨울꽃 지고 봄꽃 찬란히 피어라- 화진 가는 길

소라고둥 곁에서 시를 쓰다- 선유도 기행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네- 동화와 지세포를 찾아서

하늘 먼 곳, 푸른빛의 별들이 꿈처럼 빛나고- 어청도에서

아, 모두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삼천포 가는 길

그곳에 이상한 힘이 있었다- 동해바다 정자항에서

대보등대 불빛 속에 쓴 편지- 아름다운 포구 구만리

산도, 이 산도 쉬어가고- 진도 인지리에서 남동리 포구로 가는 길

묵언의 바다- 순천만에서

화포에서 만난 눈빛 맑은 사람들-

거차에서 꾸는 꿈-

모든 절망한 것들이 천천히 날아오를 때- 향일암에서 나무 새의 꿈을 만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팥죽집 가는 길-

바람과 용, 그리고 해산토굴 주인을 위하여-

개펄이 만든 지평선이 보이네- 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집어등을 켠 만휴의 바다- 남제주군 대정읍 사게포

바다로 가는 따뜻한 바람처럼- 우도로 가는 길

신비한 하늘의 아침- 조천

저 너머 강둑으로 가고 싶어요- 바람아래 해수욕장을 찾아서

동백숲 속에 숨은 선경- 지심도로 가는 길

춘장대에서 '교코'를 읽다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의 항구- 충남 서천군 장항

봄비 속에서 춤추는 공룡들의 발자국을 보다- 경남 고성군 상족 포구

갯바람 속에 스민 삶에 대한 그리움- 해남 송지 어란 포구

 

똑같은 섬이나 포구를 다녔는데도 시인의 눈으로 보고 느낀 평범한 사실조차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과 유의미한 사실로 만드는 재주에 감탄하면서 다시 가게 되면 시인의 관찰을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