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읽고...

깃또리 2004. 5. 26. 22:31

"곽재구의 예술기행" 을 읽고

곽재구 지음

2004. 4.

 

 

 

 

 사람이 타인을 만나 5~8초 안에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 짓는다고 하는데 나도 책을 손에 들면 책의 장정이나 제목 그리고 손에서 느끼는 무게로 책의 인상이 순간 정해진다.

아마 표지가 아트지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미색계통이고 무엇보다는 책이 가뿐하게 가벼워 표지를 열고 종이 지질을 살펴 보아도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단지 "사평역에서" 라는 시로 알려진 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곽재구 시인의 예술기행을 읽고 그의 문체에 반하여 포구기행도 읽고 싶어졌다.

 

 요즘 책은 예전과 달라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글씨의 호수가 커졌고 줄 간격과 좌우 여백도 넓으며 문단 사이도 훌쩍 띄워 어떤 책은 마음 먹고 진득하게 읽으면 채 두시간도 안 걸린다.

오래 전에 읽었던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 같은 책을 지금 식으로 출판한다면 족히 세권 분량도 넘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떤 책은 한 권으로 가능한걸 두 권 세권으로 만들어 출판해 우리의 주머니를 가볍게하는 그 상술이 속이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하긴 가뜩이나 책 읽기를 기피하는 세태에 그렇게 해서라도 책 한권 읽기를 마쳤다는 기분을 주는 것도 크게 탓 할 일이 아니고 책의 분량이 중요한게 아니고 책 속에서 자기 삶의 지침을 얻는다면 분량을 따지는 일은 속 좁은 일이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책을 열어보니 곽시인이 작년에 포구기행을 썼고 올해 이 책을 펴내 결국 나는 출판순서로는 거꾸로 읽는 셈인데 책을 다 읽고 덮기도 전에 포구기행을 꼭 읽어 보아야 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경우에 책을 다 읽고  아! 이 책은 서점에 들려 사다 놓고 두고두고 가끔 꺼내 읽어 보아야겠다고 하는 책이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필자 김병종교수의 "화첩기행 1.2." 가 그렇고 신영복교수의 "나무야 나무야" 빈센트 반 고흐의 책들이 그렇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오래 전에 읽은 한호림씨가 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라는 책은 이렇게 공들여 만든 책은 값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어느 책인들 저자의 수고가 안 들어간 책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책을 읽다 보면 더 애착이 가는 책이 있게 마련이다.

곽재구시인의 책도 다시 서점에 들려 사야 할 책의 하나다.

책 내용은 국내 근현대 문학작가, 화가들의 출생지나 연고지를 찾아 다니며 시인의 눈으로 보고 느낀 수상을 적은 기행산문집이다.

 

이성복- 남해금산 미포포구

김동리의 "역마"회상- 섬진강 화개장터

"국화 옆에서"의 서정주- 고창 선운사와 질마재

"껍대기는 가라"의 신동엽- 금강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 강진

추상미술가 김환기- 전남 신안군 기좌도

진도 소리를 찾아서

재독화가 윤이상- 그리운 통영

"목마와 숙녀"의 김인환- 서울 인사동

"메밀꽃 필무렵"의 이효석과 섬강에 진 장재인 -봉평과 섬강

관념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 전남 장흥

 

 여기서 특기하고 싶은 내용은 장재인에 대한 애틋한 사연을 곽시인이 추적한 이야기였다.

1990년 9월1일 강원여객은 28명의 승객을 싣고 서울을 향해 빗길에 과속으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섬강다리의 난간을 부수고 다리 아래 섬강으로 떨어져 4명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나머지 24명이 사망한 대형사고가 발생하였고 나도 오래 전 사고지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수없이 강원도를 다니면서 이 다리를 지나칠 때마다 이 강에서 아까운 생령들이 스러진 것을 회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곤 했다.

섬강은 봉평면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원주를 감아 돌아 간현유원지 앞에 두꺼비(蟾.섬) 같은 섬 하나를 만들며 곳곳에 수려한 풍광을 이루며 흐르다 남한강 품에 안기는 제법 넓은 이름도 아름다운 강이기도 하다.

곽시인은 이 사고로 가족을 잃고 스스로 죽음으로 치 닫은 한 시인이자 덕수상고 영어교사였던 장재인에 대해 적고 있다.

장재인은 홍천군 내면의 고등학교 불어교사인 최영애의 남편으로 둘은 공주사대를 선후배 사이로 부부교사인 셈인데 그 당시 아들 하나를 둔 주말 부부였다.

평소 부부 금슬이 좋았으나 사소한 다툼이 있어 장교사가 내면을 가기로 한게 바뀌어 최영애교사가 서울로 오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회한에 쌓인 장재인은 혹시라도 차가운 강물 속에서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를 아내와 아들을 기다리며 밤을 새워 빗속에 섬강가에 모닥불을 지피고 기다렸으나 사고 후 5일 만에 아들이 다시 8일 후에 그렇게도 사랑하던 아내의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르자 살아 돌아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장재인은 2일 후인 사고 보름 후에 장인과 장모 그리고 친지들에게 부탁하는 18페이지의 긴 유서를 남기고 서른 세해의 짧은 목숨을 스스로 버렸다고 한다.

장재인은 공주사대 시절 학생회장으로 부조리한 사회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치열하게 투신하기도 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다정다감한 시인이었으나 그의 유서를 읽노라면 사무치는 안타까움이 배어들며 지금도 인근 경기도 강원도 사람들은 이 애틋한 사연을 기억하며 그를 "바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아쉬워 한다고 한다.

 

 " - 세상을 붙잡으려다 처자를 버리고, 이제는 처자를 부여안기 위하여 세상을 버리려 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다시 강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따라 떠나려 합니다. 이것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이래 강물을 바라보며 제 마음에 간직해오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 세 식구가 지닌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삶의 경종이 어디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하지 말 것을 당부드리며 저희 세 식구 하늘나라에서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헌신적이고 겸손하며 빈곤한 저를 풍요롭게 하던 가없이 고운 아내와 아들이 저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저희 세 식구의 주검은 가운데 아들, 아들의 왼편에 아내, 오른편에 저의 순서로 나란히 관 하나에 묻어주시고, 묘지는 장인 어른의 뜻을 존중하여주십시오. 저와 아내의 결혼 반지는 그대로 끼워두시기 바랍니다. 먼 훗날  부보님과 장인 장모님 모두 돌아가신 후에 다시 화장하여 강물에 띄워줄 것을 부탁합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1990녀 9월 15일 02시

 

 

 

 그는 남한강 공원묘지에 그의 소원대로 묻혔고 곽시인은 섬강다리, 내면 고등학교, 시신이 안치 되었던 병원등을 찾아 당시를 회상하였고 책에는 "섬강에서 하늘까지"라는 소설을 조해인 이란 소설가가 썻다는 말이 있다.

또 책에는 장재인의 <사랑>과 <들풀> 그리고 <별>이라는 세 편의 시가 게제되었다.

 

하루가 저무는 언덕

스러지는 붉은 노을 보았니?

수고로운 땅을 굽어 보는

사랑의 핏빛이지

밤에는 별이

희미하게 비치는 까닭을 아니?

그것은

한낮의 피곤으로도 못다한 꿈

고뇌를 덮어주고 있단다

아니면 이 밤에도 공장을 지키는 누이의

피곤한 눈꺼풀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주는 것이지.

 

 

                                       -장재인 <사랑>

 

 이기심이 세상을 뒤덥고 부부의 사랑도 물신의 힘에 점점 빛을 잃어가는 삭막한 세태에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슬픈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