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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이지 않았던 그 사람

깃또리 2006. 2. 8. 19:49
 

The man I didn’t kill  내가 죽이지 않았던 그 사람

Andrew Chamson

김동욱 옮김

 

 

 

 그날 아침 기온은 영하18℃였다. 우리가 걸을 때 언 땅은 마치 성당 보도 판석처럼 소리를 냈다.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나뭇가지들은 우리가 슬쩍 대기만 해도 마치 유리처럼 부서졌다. 대기자체도 살을 에이는 듯 했다.

 그런 기온에 익숙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우리들은 북극에 사는 캐나다인, 노르웨이인, 핀란드인도 아닐 뿐 더러  대부분은 프랑스에서도 항상 태양이 풍부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때는 1940년, 소위 “ 엉터리 전쟁 Phony War ” 라고 부르던 기간이며 보스게스산맥 에서였다.

그날은 뭐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날이었다.

 우리는 대개 아군이 전선을 이루는 참호가 있는 곳 까지만 나가면 되었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별나게 적의 위치를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상사 한 명, 병사 셋, 당시 대위였던 나 이렇게 다섯이 아침 일곱 시경에 출발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가 했던 다른 날과 같지 않은 그런 정찰활동 이었다. 모든 게 뜻대로 안 풀렸다. 전투상황에서는 군인들은 최소한 작은 소리도 들을 필요가 있었는데, 영하 18℃ 날씨에서 털 벙거지를 뒤로 재껴 자기 귀를 내놓는 일은 위험한 모험이었다.

 두 귀 어느 쪽 귀도 얼지 않도록 오른쪽 귀와 왼쪽 귀를 교대로 얼른 벗었다가 덮었다가 했다.

총에서 흐르는 모든 기름 흔적도 닦아야 했는데 마치 불에 달구어진 쇠처럼 엄청나게 차가운 쇠붙이 때문에 장갑을 끼고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우선 작은 시냇가의 두 군대 방어선 사이에 비어있는 숲 속의 집을 향해 우리들은 나아갔다.

우리측이나 독일군측 어느 쪽도 그 집을 완전히 점유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 집은 우리들이 포진한 계곡의 양 측 산등성이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밤에는 우리들은 자주 그곳에서 적의 순찰병들과 마주치곤 했고 대개 먼저 그 집에 들어온 점령자들은 나중에 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누구든 그 집을 먼저 차지하면 우선 그 계곡의 주인이 되었으나 그 점령이 계속 유지될 수는 없었다.

이래서 그 집이 비어있는지 누가 점유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집을 빙 둘러싸며 접근했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그래도 총을 겨누고, 잔뜩 긴장하여 발사 준비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그 작전이 위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너무 춥네요, 그분들은 우리만큼 멍청하시지 않아, 오늘 안 나오셨구만요.” 상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열 종대로 나아갔다. 들판, 숲,시냇가의 가파른 둑, 언덕의 비탈 모든 곳이 예전보다 텅 비어 보였다.

하늘에 새 한 마리도 날지 않고 그 어느 곳에도 살아있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내리누르는 정막은 그 정적 속에 위협적인 무엇인가를 품고 있었다.

전진할 때 우리 모두 거의 고통스러운 그 어떤 것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적의 감시선이라 짐작되는 지점에 가까이 다달았을 때 포복을 시작하자 나는 가슴 밑 차가운 땅이 온몸에 전해왔는데 어느 땐 맨땅이었고 어느 땐 어느 다른 세상에서 왔음이 틀림없는 눈과 작은 얼음조각이 흩뿌려 있었다.

 

바로 그때 돌연 나는 내 오른쪽 부하 한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포복을 멈추며 손으로 위험 표시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서둘러 그가 있는 조금 위쪽으로 기어갔다.

우리는 작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쭉 뻗어나간 지형의 꼭대기에 해당하는 지점에 마침 와 있었다.

 “독일 놈!” 부하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손으로 가르켰다.

63m 정도 떨어진 작은 골짜기 아래 경계호가 있었고 그 구덩이 안에 우리를 등지고 두 귀도 덮고 검은 털 벙거지로 목을 감싼 독일 보초병 한 사람이 있었다.

나의 부하 하나가 카빈총을 들어올렸다. 나는 내게 맡겨 라는 의미의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사격장의 표적물과 같이 서있는 적병을 조심스럽게 조준하였다.

한쪽 눈을 감고 다른 쪽 눈으로 이 알지도 못하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검은 털 벙거지에 덥힌 목덜미를 조준하면서 나는 총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내가 방아쇠를 막 당기려는 순간 그 독일군이 마치 곰처럼 두 손을 쳐들고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목표물을 놓치고 두 눈을 떴다.

조금 전 그 단지 목표물이었던 게 바로 사람이라는걸 나는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이 추위에 고통 받는, 나와 똑 같은 한 인간, 그 혹독한 추위에 고통 받는, 나와 똑 같은 한 인간, 그 혹독한 추위로부터 자신을 막아낼 생각만 할뿐인 발이 시리고 손가락이 곱고 귀가 들리지 않는 한 인간, 나는 결정을 내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도 없었다. 내 총신은 저절로 아래로 내려졌고 다시 조준할 마음도 없었다. 손짓으로 내 부하들에게 철수 신호를 하였다. 우리는 다시 포복하여 계곡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 일어선 다음 숲을 통해 나아갔다.

 

안에 들어서자, 상사가 입을 열었다. “잘하셨어요, 대위님. 그 자식 지독하게 추웠겠죠? 그래서 쏠 수가 없었죠?” 부하들이 웃음을 짓고 그 웃음은 그들이 내가 한 행위를 인정한다는 표시였다. 우리들의 임무는 완료되었다.

우리는 적의 보초선을 알아냈고 또한 적들이 산등성이에 설치한 방어 거점의 위치도 알아냈다.

“임무완료” 상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자식이야말로, 너무 추웠나 봐” 부하 하나가 말했다.

그 추위가 전쟁을 사라지게 해 버렸다. 우리나라가 침략과 패배를 당해 비참했던 일들로 점철된 그렇게 많은 다른 날보다 그 이상하게 우연히 벌어졌던 사건이 일어난 그 날이 왜 생생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을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내가 목숨을 살려준 그 독일 보초병의 모습이 가슴에 남아 있는 게 전부였으며 독일군의 얼굴은 본 일이 없고 단 몇 초 동안 내 표적이 되었던 검은 털 벙거지로 목을 두른 목덜미의 모습뿐이었다.

 

1943년 겨울 어느 저녁에 나는 기차를 기다리느라 몽타우반 역 승강대에 있었다. 육중한 포로 수송열차 한대가 우리 앞에 섰으며 그 수송열차는 저 낯선 세상인 포로수용소를 향해 떠날 참이었다. 잠깐 정지해 있는 동안 독일병사들이 열차 앞에서 경비를 하려고 우리들 앞에 도열하였다.

순간 나는 공포감이 엄습했었는데 내 오른쪽 45m 정도 앞에 철모를 쓴 독일군들 중 한 사람의 목덜미가 검은 목도리로 덥혀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목숨을 살려준 그 독일 보초병 인 듯 하였다. 나는 그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날 내 카빈총 사정거리 안에 있었던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 나를 몹시 자책하였다. 그 어두운 시절 여러 차례 똑 같은 후회를 되풀이 하고 나는 일종의 분노의 감정으로 이 사람을 살려 준 것을 잘못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점령 당해 노예상태로 지낼 때 마치 환각에 빠진 것처럼 털 벙거지를 쓴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내가 그 사람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던 그 사람, 바로 그자야. 그자를 살려준 사람은 바로 나야” 라고 내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다시 평화를 맞은 다음 어제의 적은 이제 친한 이웃이 되었다. 내게 그 사람은 그 전쟁 동안 우리 모두에게 괴물 같은 환영으로 비치던 일이 더 이상 사려졌으며, 최근 Black Forest(독일 삼림지역)에서 열린 산림 관련 회의장에서 나는 독일작가와 지식인들을 그 전쟁 이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어느 저녁 야외파티에서 오른쪽 가까운 거리에 서있는 지난날 적들의 하나였던 등을 보이고 검은 목도리를 한 사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목을 뚫어져라 보며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바로 그 순간 친구 하나가 내 팔을 잡아 끌고 그 독일인에게 소개하였다.

내가 그 사람얼굴을 처음 보았으면서도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조금 근엄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평온함을 지닌 밝은 얼굴이었다. 그도 우리들과 같이 살벌한 대 격변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그런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의 대화에서 그 사람도 내가 하고 있는 같은 일을 좋아하고 있었으며 사실은 같은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대화하면서 나의 의식적 노력 없이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바뀌는 듯 했다.

 

적을 살려주었다는 오래된 자책과 점령 기간 동안 그 고통스런 세월 그렇게도 뼈저리게 괴롭히던 바로 그 후회가 희열로 완전히 바뀌었고 아마 이 사람의 목숨은 내가 구해줬다는 생각에 불현듯 기쁨으로 가슴이 충만하였다. 만일 지금 내가 이 사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때도 이 사람을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이 사람에게 총을 쏘지 못 했을 거라 속으로 생각했다.

그 독일군이 몸을 덥히기 위해 자신의 팔을 흔들어 이로써 내 가슴에 인간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것과 누구에게나 참기 힘든 그 혹독한 추위가 우리들에게 형제애를 싹트게 했다. 그러나 우스꽝스런 이런 동포애가 서로 다른 우리들을 진정 하나로 묶어주는 또 다른 동포애와 비교하여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만일 어느 누가 또 다른 어떤 사람을 진실로 잘 알고 있을 때 그가 어떻게 실제로 알고 있는 그 사람 친구를 우리들 누가 죽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만일 어느 누가 이름없고 얼굴 없는 로봇 적군이라면 죽일 수 있지만 목수, 농부, 화가 또는 철학자이고 자식을 키우고 아내와 어머니가 있으며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고 슬픔과 희망 속에 사는 바로 우리와 똑 같은 어떤 존재라면 그를 죽일 수 있을까?

 

내 생애에서 그 가장 추운 날 내가 목숨을 살려준 그 독일병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회상보다 강하게, 만일 우리 각자가 그의 내재적 고귀함과 그리고 분명한 결점으로 서로 친구를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결코 또 다른 전쟁을 없으리라는 것을 나에게 이해하도록 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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