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을 읽고...

깃또리 2020. 8. 7. 16:52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을 읽고...

Alain De Botton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이래

 

 

 

 

세상의 지식은 무한하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먹고사는 일에 바쳐야 하는 생활인에게 한가롭게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다. 매일, 매달 쏟아져 나오는 신간서적의 제목과 서평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겨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휴대전화에 그리고 작은 수첩에 메모하기도 한다. 또는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걷다 눈에 들어오는 낯 선 제목의 책을 손에 들었다가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생각하여 욕심을 버리고 힘없이 서가에 다시 꽂아 두기도 한다. 왜 내가 이렇게 길게 서론을 늘어놓느냐 하면 이 책<여행의 기술>20093월에 구입하여 한 번 읽고 난 다음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들어 다시 읽고자 서가에 꽂아 두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리하여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넘쳐나는 신간에 밀려 2년 넘게 책상 위에 있다가 이번 주에 다른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꺼내 읽어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는 내가 좋아한 책들만 재차 반복해서 읽은 셈이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다시 읽었고 윌리엄 새커리의 영문 요약본도 두 번째 읽었다.

 

대부분 요즘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여 지루함이나 작은 고통조차도 잘 참지 못한다. 나 역시 책을 읽다가 지루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책을 덮고 가까이 있는 다른 책을 읽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기분으로 쉼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보통 두서너 권을 함께 읽지만 어느 땐 여섯 권의 책을 번갈아 읽은 적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많은 책은 그렇고 내 경험으론 두서너 권을 함께 읽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이 책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말 그대로 보통 사람이 아니고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다. 한 권의 책에 이렇게 많은 지식을 담고 있으며 오래된 사람들의 글과 경험을 자신의 생각으로 바꾸어 유기적인 조합으로 쓴 책을 읽다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책의 부제가 <여행 에세이>이며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이라는 다섯 개의 큰 제목에 각장은 다시 2개의 장소와 2명의 안내자를 두었다. 다시 말하면 어느 특정한 여행지를 장소로 정하고 그 장소에 자신이 직접 다가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적었으며 아울러 그 장소에 관련 있는 역사적인 인물을 가상의 안내자로 정하여 행적이나 그의 글을 함께 다루어 사뭇 독특하고 교양을 얻을 수 있는 흥미 있는 여행 에세이다.

 

장소와 안내자는 아홉 개가 짝 지어졌다. 다시 말하면 이 아홉 개의 짝에 각각 소주제가 붙어있고 자신의 여행 소감이 더해진 고급 교양 여행기록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특히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은 <풍경>제목에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란 부제목으로 영국 웨일스<레이크 디스트릭트>장소에 안내자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이며, 또 하나는 '<예술> 제목에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란 부제목으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안내자는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독서후기를 쓰는 목적은 내가 후일 책 전체를 읽기 어려울 때 후기라도 읽어서 책 내용을 기억하고 싶은 것과 혹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자 할 때 작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까지 적고 더 이상 쓸 수가 없다왜냐면 읽었던 책을 다시 앞장부터 넘겨보니 너무 적어둘 게 많다 보니 작은 분량의 독서후기로는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이 책은 후일 다시 읽고 또 읽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무조건 읽어보라고 권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관심사가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별로 흥미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동기>라는 소제목에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에 나오는 안내자 구스타브 플로베르와 그의 이집트여행 이야기는 후기에 도저히 빠트릴 수 없다. 플로베르는 11살 때 이집트 테베에서 프랑스 증기선 특별 화물칸에 실려 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오벨리스크 Obelisk를 보기 위해 자신의 고향 루앙이란 도시에서 어른들과 함께 구경을 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집트 신전에 세워졌던 고대 유적 오벨리스크를 약탈하여 자신들의 도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세워 놓았다. 이런 사례로 가장 오랜 일은 로마제국시대로 지금도 로마 시내 곳곳에 오벨리스크가 옮겨져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티칸 성당 앞 중앙 광장 복판에 세워진 것이며 로마제국의 역사가 길다 보니 전 세계에서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수의 오벨리스크가 이탈리아에 있다. 다음으로 앞서 말한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 이집트 테베에서 옮겨와 파리 콩코드광장 중앙에 세웠으며, 영국이 가장 화려한 위세를 자랑하던 엘리자베스 1세 치세 기간 역시 이집트에서 옮겨와 런던 템즈 강가에 세워 놓고 Elizabeth Needle이란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터키도 역시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기에 지중해 역세권을 제패하였을 당시 이스탄불 시내 Blue Mosque 앞에 오벨리스크 하나를 옮겨 놓았다. 내가 1970년 대 말 이집트에서 일할 당시 휴가를 이용하여 이집트 룩소를 방문하였을 때 카르낙 사원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오벨리스크를 보았으며 관광지 코스 중에 ‘The Unfinished Obelisk’라는 곳도 있었다. 이곳은 오벨리스크를 제작하다 그만둔 현장으로 관광객들은 3천 년 전에 오벨리스크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여 좋은 구경거리라 생각하였었다.

 

 나는 이 시기부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에 관심을 가져 이런저런 여행길에 이집트 밖에 있는 대부분의 오벨리스크를 모두 볼 기회를 가졌으며 가장 최근으로는 몇 년에 본 터키의 오벨리스크이다. 10여 년 전 미국에도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있다 하여 처음에 나는 반신반의하였다.. 설마 미국이 영국이나 프랑스 그리고 터키와 같이 제국 흉내를 냈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사해보니 뉴욕 센트럴파크에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 가져와 세웠으며 운반과정에 어려운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어 미국이란 나라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미국도 제국주의 욕심을 숨기지 못하고 예전의 황제들이 하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따라 한 셈이다.

 

나는 어느 날 오벨리스크에 관하여 사무실의 개신교 신자인 어느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신도 기독교인이지만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기독교 계통 국가들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고대 이집트 유물을 약탈하여 자기 나라에 세워 놓은 일은 수치스러운 짓이라고 말하여 나는 공감하기도 하였다.

 

오벨리스크에 관련하여 또 다른 이야기는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과 링컨 동상의 축전의 중간쯤에 돌로 쌓은 오벨리스크가 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수직으로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듯하며, 오벨리스크는 우리말로 방첨탑(方尖塔)이라 부르며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꼭대기에는 금을 입혀 햇빛에 반짝이도록 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플로베르가 오벨리스크 운반 군함을 강가에서 보았다는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여행 중에 마주했던 이곳저곳의 오벨리스크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몇 가지 사실을 적어 보았다.

 

플로베르는 이 당시의 인상이 강하여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마쳤으나 변호사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차에 24살에 아버지가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사망하자 시인이자 소설가인 막심 뒤캉(1822~1894)이란 친구와 함께 184910월 파리-마르세이유-지중해-알렉산드리아-카이로-나일 강을 따라 룩소르로 아홉 달 동안이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그곳의 정서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다. 오죽하면 그는 "나는 진이 빠질 때까지 낙타 울음을 흉내 내는 연습을 합니다."라고 카이로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880년 그의 나이 79살로 당시로는 꽤 장수했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임종 직전 조카에게 야자나무와 황새가 모스크 첨탑에 앉아서 쪼는 소리가 듣고 싶다며 이집트에 대한 향수를 내비치며 평소 그는 자신이 여자이고, 낙타이며, 곰이라는 고백도 했다 한다. 내가 이렇게 플로베르에 대하여 길게 인용하는 것은 사실 나도 이집트에 대한 향수가 짙으며 지금 30년이 흘렀지만 그 당시 주워 들었던 흔히 쓰던 아랍어 몇은 잊혀지지 않고 입에서 새어 나오기도 하며 언제 다시 가 보는 것이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