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선유도를 다시 찾아가다.

깃또리 2019. 2. 19. 12:53

선유도를 다시 찾아가다.


선유도, 섬 이름은 한강 여의도 동쪽에 있는 작은 섬 이름이기도하고 전라북도 군산 앞 바다 고군산군도에 있는 여러 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약 30년 전쯤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 넷이서 여름휴가를 선유도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당시 군산과 선유도 사이를 오가는 작은 여객선을 타고 가족 넷이서 여객선 난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어느 남자분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묻더니 너희들이 조금 크면 선유도를 자동차로 갈 수 있다 하였다. 나는 처음에 카페리 선을 말하는가 생각하다가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육지와 선유도 간에 도로가 개설 될 거라 하였다. 좌우를 둘러봐도 망망대해로 육지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어떻게 도로가 생기는 것인가? 다리를 놓거나 둑을 쌓을 텐데 아무튼 상상이 가지 않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지나가는 이야기로 잊고 지냈다.

 

그 뒤 어느 신문인가 방송에서 군산에서 선유도까지 길이 열렸다는 내용을 오래 전에 듣고 언제 시간이 되면 가보려니 하였다. 누군가 군산이란 지명은 산이 많이 모여 붙여진 이름이랴 하였는데 이번에 알아보니 그런 것이 아니고 인터넷 검색은 다른 내용이었다. 조선 초기 태조시기에 선유도 섬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여러 섬을 군산도라 불렀으며 금강과 만경강을 따라 내륙에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고자 수군부대인 만호영을 설치하였다 한다. 세종 임금시기에 수군부대를 옥구군 북면 진포(현: 군산)로 옮기고 진포를 그냥 옛 부대 주둔지명인 군산진으로 부르고 옛 군산은 고군산이라 불렀다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일대를 고군산군도(高群山群島)라 부른다. 어느 기록에 보니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대첩에서 혁혁한 승리를 하시고 이곳 고군산군도에서 얼마간 머무르시기도 했다 한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시에서 서남쪽 약 30km떨어진 해상에 위치하여 선유도를 비롯하여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관리도, 장자도 등 약 유인도 16개에 무인도를 합하여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선유도는 선녀가 춤춘 곳이 아니고 신선이 거닐었다는 전설과 무녀도는 무당이 춤을 추는 모습이어서 이름 붙어졌다 한다.

 

내가 지난 번 여름에 처음 갔을 때는 휴가철이어서 빈방이 없어 걱정하던 중 배를 같이 타고 가던 현지 주민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 빈방이 있다하여 감지덕지하였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 집은 선유도 선착장에서 곡선으로 이루어진 선유도해수욕장 따라 한 참을 가야하는 선유도 끝자락이어서 30분 정도 걸어가야 했는데 우리가 요금을 내기로 하고 콜 보트를 호출하여 바다를 건너가는데 작은 배에 너무 많은 사람이 승선하여 배가 물에 푹 잠겨 배전에 물이 찰랑찰랑 거려 일순 불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붉고 둥근 해가 바다에 잠기는 모습을 수평선에서 가장 가까운 눈높이에서 보게 되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도 바다에 지는 일몰 풍경하면 그 당시 모습이 떠오를 정도이다.

 

사실 그 아주머니 집에 빈방이 하나 더 있어 같이 승선했던 서울에서 온 아가씨 셋과 함께 한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동네 총각들이 나타나 서울 처녀들에게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집 마루에서 보이는 돌섬에 데려다 주겠다고 수작을 하여 우리 식구들도 함께 부탁하여 총각들이 가지고 온 스티로폼 위에 한 사람씩 타고 뒤에서 총각들이 수영하면서 밀어 주어 물 빠진 갯바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굴을 비롯한 이름 모를 해초를 거두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 물이 들어오자 총각들의 수고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 뒤 작은 산을 넘어가니 작은 모래 해변이 나타나 우리 식구와 처녀들은 전용해수욕장처럼 즐기던 기억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이번 방문에 그 동네를 가보려 했으나 멀리서부터 이미 다닥다닥 밀집한 집들이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되어 보이고 입구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이 꾸물대고 있어 주차사정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선유도 다음 섬에 잠시 들른 뒤에 서둘러 선유도를 벗어나 다음 행선지인 신안군 증도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