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명두>를 읽고....

깃또리 2018. 7. 10. 12:33

<명두>를 읽고....
구효서
중앙일보, 문예중앙
2018.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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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작품을 읽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으려고 집어든 책이다. 2006년, 지금부터 12년 전 문학상 수상작이므로 시의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사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깊은 감동을 주고 흥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지나면 우리들은 이런 작품을 소위 고전이라 한다. 황순원 문학상은 중단편을 대상으로 하는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단편을 대상으로 하는 '이상 문학상'이 역사와 전통이 깊고 얼마 전 부터 '황순원문학상'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상으로는 단연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하는 '노벨문학상'과 프랑스의 '공쿠르상', 영국의 '맨 부커상', 미국의 '퓰리처상', '오 헨리상' 등이 유명하다. 문학상의 상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노벨 문학상 상금이 스웨덴 화폐로 1000만 크로네(한화 약 12억~13억)로 가장 많고 맨 부커상은 영국의 파운드화로 5만 (한화 약 7.500만원), 공쿠르상은 10유로(한화 약 1.250원)이며 이상 문학상은 3,500만원, 황순원문학상은 5,000만원이라 한다.


  공쿠르상의 상금은 우리나라 버스 편도요금 정도인데 오히려 상금이 적어서 오히려 명예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며 상금을 현금으로 주는지 또 어떤 봉투에 넣어서 주는 지도 궁금하다. 2006년은 구효서씨가 <명두>로 수상의 영예를 얻었고 최종 후보작으로 아홉 명의 작가 작품이 실렸는데 후보작가 아홉 중 일곱 명이 여성이고 남성이 두 명으로 여성작가가 단연 우세한 해였던 것 같다. 나는 여성작가 중에서 <무릎>을 쓴 윤성희씨 말고는 모두 한두 편 작품을 읽었던 작가들이다. 이 중에서 특히 <아름다움은 나를 멸시한다>를 쓴 은희경씨의 소설은 여러 편 읽었다. 또한 다른 책에서 이미 이 단편 작품을 읽기도 했다.
 
 수상작 <명두>의 화자는 사람이 아니고 150년 살다가 죽은 지 20년이 된 ‘굴참나무’이다. 툇골이라는 산골 작은 마을 앞에 서 있던 나무의 시선으로 차츰차츰 변모하는 산골 동네 모습과 시골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특히 이 나무 가까이 살고 있던 가난한 여인이 이 굴참나무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고 새로 도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려 했으나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으나 동네 어떤 심술궂은 사람이 나무 밑에 농약을 부어 죽게 만들었다. 그래도 죽은 나무조차 베지 못하게 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자신의 세 아이를 이 나무 밑에 묻는다. 소설에서는 무당이 되었다는 말은 없으나 아픈 병자를 호통 쳐 일으켜 세우는 신통력을 발휘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압적으로 휘어잡는다. 동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사는 집을 명두집이라 하였는데, '明斗'는 이제 막 죽은 어린애의 손가락을 말려 보관한 것으로 이 명두를 지닌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옛날 사람들은 믿었다 한다.
 
 이 소설은 50년대 후반으로 설정되었으며 이렇다 할 크라이막스나 큰 사건 없이 무지한 시골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여 나에겐 큰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몇 군데 어색한 부분으로 수령이 150년 되었다는 나무의 높이가 너무 낮게 묘사되었고 '민들레 홀씨'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사실 '홀씨'란 식물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하여 형성하는 생식세포로 흔히 '포자'라 하며 예를 들면 버섯의 생식 세포가 여기에 해당한다. 1985년 박미경씨가 강변가요제에서 <민들레 홀씨가 되어>라는 노래를 불러 장려상을 받은 이후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지다 보니 누구나 민들레 홀씨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민들레 '깃털 붙은 씨' 너무 길다면 민들레 '깃털 씨' 정도가 어떨까 한다. 일반인들이 잘못 사용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글을 쓰는 작가는 최소한 바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민들레는 영어로 'Dandelion' 인데 원래는 'Dent of Lion' 즉, '사자의 이빨'이다. 왜냐면 민들레 꽃잎이 마치 사자 이빨처럼 생겼다 하여 서양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그러나 Dent가 요철, 이빨, 흠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어째서 Dentelion이 아니고 Dandelion 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하긴 영어도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철자나 발음이 무수히 변했으니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다른 예로 헤어지면서 하는 인사말 'God be with You'가 세월과 함께 변하여 Goodby가 되었다는 내용을 나는 처음 알았을 때 퍽 재미있고 의외라 생각했었다. 또 민들레하면 떠오르는 생각으로 오래 전 독일에 사는 김영희란 여성이 쓴 <아이를 잘 낳는 여자>라는 책에 독일에서 민들레를 발견하고 한국에서처럼 민들레 나물을 해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나는 아~ 독일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민들레가 있구나 했었다. 그러나 요즘 외국에서 들어온 민들레가 토종 민들레를 제치고 온 사방에 자라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
 
 당선작보다 후보작 중에서 김인숙의 <조동옥, 파비안느>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내용은 1335년 고려 충숙왕 복위 4년에 세상을 떠나 묻힌 수령옹주 묘지(묘지명)가 중앙박물관 도록 134페이지에 나온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여러 사람들의 묘지명 이야기가 나와 흥미롭다. 이  묘지명 이야기 사이사이에 주인공 여자 '경애'가 남자 친구와 연애 이야기와 자기 어머니 이혼이야기와 자신을 아버지에게 맡긴 후 친정 식구들이 사는 브라질로 떠나버린 매정한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브라질에서 한국 남자와 재혼했다가 헤어지고 다시 브라질 남자와 살다 죽었는데 그 이름이 조동옥이고 브라질 이름은 파비안느로 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여자는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스스로 '개잡년'이라 했다는데 아마 어찌어찌 살다가 세 남자 품에 안기게 된 자신의 처량하고 슬픈 처지를 자조적으로 비웃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묘지명 이야기로 돌아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묘지명이 이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남존여비의 시대에 어느 선비는 자신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묘지명을 직접 지었고 여자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던 당시였지만 묘지명에 부인의 이름 '경애'를 분명히 썼다 한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 이름과 같다. 조선시대 묘지명은 지금과 달리 중요한 자료에 속한다. 왜냐면 요즘으로 보면 한 사람의 평전이고 약력기술인 동시에 조선 후기로 내려와서는 묘지명을 죽기 전에 직접 본인이 적기도 하여 필사하여 한 통은 무덤에 넣고 다른 한 통은 후손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도록 하였다. 이를 '자천 묘지명, 自撰墓誌銘'이라 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자서전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묘지명을 보면 그 당시의 사회상이나 관습, 사대부의 가치관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형식은 산문이다. 나는 1980년 중반 우연한 기회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산문집을 손에 들었는데 그 안에 자천 묘지명이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고 이를 계기로 다산 선생의 책을 몇 권 더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묘지명 부분에 눈길이 많이 머물렀다. 


 기왕 묘지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2018년 6월 29일 자 중앙일보에 작고하신 김종필씨 묘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 스크렙하여 언제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흔히 공자님 말씀이라고 한다. 너무 당연해 듣기에 거북하지만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그런 공자가 이상형으로 꼽은 이가 있다. 거백옥(蘧伯玉)이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보다 20~30년 앞서 살다가 갔다. 군자의 뜻을 이룬 선생님이라는 뜻에서 후세 사람들이 ‘성자(成子)’라는 별칭도 붙였다. 중국 고전 중 하나인 『회남자(淮南子)』에 거백옥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거백옥은) 나이 50을 살았지만, 지난 49년이 헛된 것 같았다’(年五十, 而有四十九年非)고 썼다. 요즘 나이 쉰은 팔팔한 청춘이지만 2500여 년 전에는 파파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갑자기 거백옥을 꺼내 든 건 그제 영면에 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때문이다. JP는 알려진 대로 미리 죽음에 대비했다. 아내 박영숙 여사가 세상을 떠난 3년 전에 자신의 묘비명 121자를 써두었다. 그 중 ‘아흔 살을 살았지만 지난 89년이 헛됨을 알았다’(年九十, 而知八十九非)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거백옥을 패러디한 말이다. 동서양 고전에 해박한 JP의 면모를 보여준다. 평생을 2인자로 살아간 거물 정치인의 회한일 수도 있겠다.     JP의 묘비명은 동양고전 모음집 같다. 첫머리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공자가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고, 이어지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은 『맹자』의 핵심 가르침이요, 마지막 ‘소이부답’(笑而不答·웃으며 답하지 않는다)은 술과 달의 시인 이태백의 시구에 나온다. 한문학자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공자나 맹자는 기본 중 기본이지만 JP가 거백옥까지 인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자기 묘비명을 준비하는 건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옛 선비들은 죽음에 대처하는 한 방식으로 지난 행적을 돌아보는 글을 심심찮게 남겼다. 이른바 자찬(自撰)묘비명이다. 서양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처럼 생과 사를 동전의 앞뒷면으로 여겼고, 후학들에게 경계의 대상으로 삼게 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열도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일례로 다산(茶山) 정약용은 두 가지 버전의 자찬묘비명을 남겼다. 묘 안에 넣으려고 쓴 ‘광중본’(壙中本)과 문집에 실을 요량으로 보다 길게 적은 ‘집중본’(集中本)이다. 18년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 마재(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돌아온 다산은 1822년 회갑을 맞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했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가 기세를 폈지만 하늘은 그로써 너를 곱게 다듬었다’라고 적었다. 주변 정상배(政商輩)의 공격마저 스스로를 가다듬는 채찍으로 삼은 다산의 품격이 드러난다.    다산도 젊어서 거백옥을 흠모한 모양이다. ‘거백옥은 49세에 잘못을 알았지만 나는 10년 더 젊으니 더욱 바랄 수가 있네. 이제부터 힘써 큰 허물을 없게 하리’라는 시를 남겼다. 자기반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실천하는 유학자의 진면목이다. 자찬묘비명에서도 ‘죄를 짓고 후회하면서 보낸 세월이다. 모든 잘못을 거두어 매듭짓겠다’고 했다. 다산은 묘비명을 써놓고도 14년을 더 살았으니 그간의 얼마나 많은 자성(自省)을 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심경호 교수가 올봄에 낸 『내면기행』에는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옛사람들의 자찬묘비명 58편이 소개된다 결국 남는 것은 흙일뿐이라도 자신의 본모습, 조화로운 세상에 다가서려는 선인의 뜻이 담겨 있다. JP의 묘비명도 그런 오랜 전통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자향(文字香)이 사라진 이 시대 정치와 대비된다. 그렇다고 이를 슬퍼할 생각은 없다. ‘공자왈 맹자왈’ 고전 취향이 그리운 건 더욱 아니다. 단 하나, 자기 과오를 늘 헤아리는 마음가짐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요즘 나락에 빠진 보수도, 기세등등한 진보만의 문제가 아닐 터다. 산업화·민주화 시대의 공과를 두루 남긴 JP를 넘어서는 길도 그곳에 있을 게 분명하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JP의 121자 묘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