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좁은 문>을 읽고...

깃또리 2018. 7. 9. 09:43

<좁은 문>을 읽고...
앙드레 지드/ 이정림 옮김
범우사
2018.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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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십대 시절 <좁은 문>은 소위 청소년 필독서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책 한 권이 어떤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어 삶을 바꾸기도 하고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에 좋은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일이 중요하고 좋은 일이다. 나의 유년시절에 주변 친구들 중에서 이 <좁은 문>을 밤새워 읽고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여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런 내용의 글을 읽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이 책뿐만 아니라 청소년 시절 내 마음을 흔드는 책을 만나지 못한 일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하긴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비교적 내용이 짧은 이 책조차 어느 때 읽었는지 기억도 흐릿하고 단지 등장인물 중에 ‘알릿사’ 이름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책을 어느 시기에 읽어야 한다는 특별한 이유도 없기도 하여 나는 다시 <좁은 문>을 꺼내 다시 읽었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 ‘제로옴’이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의 ‘르아브로’는 책이나 자료에서 자주 나오는 낯익은 지명이어서 지도를 펴보니 파리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세느 강이 큰 도시 ‘루앙’을 지나 대서양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경관이 수려한 항구도시이다. 이 도시가 파리에서 가까운 해안도시이기도 하여 많은 프랑스 유명 인사들이 휴양지로 방문하여 이런저런 글에 자주 나타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의 아버지라 할 모네가 이곳에서 아침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해 뜨는 모습을 그려 전시하였는데 당시 이런 그림도 그림이냐는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소위 인상주의라는 사람들의 전시회”란 말에서 Impression, 인상주의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는데, 소설에서 주인공 제로옴이 이 도시의 바닷가에 가는 대목이 나오긴 하지만 그가 살았던 집은 해안에서 조금 육지로 들어 간 곳으로 주변 과수원과 오솔길 등이 소설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다. 제로옴은 12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 개인 여교사인 미스 플로라 아슈뷔르똥의 훈육으로 성장한다. 미스 플로라는 어머니보다 몇 살 정도 위이며 평생 결혼하지 않고 제로옴 집에서 기거하며 어머니의 말벗이자 친구로 지낸다. 개인교사를 하려면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1910년대인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프랑스에서도 교육을 받은 여성이 독신으로 사는 일이 흔했던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로 당시 유럽은 사촌과 결혼하는 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 앙드레 지드도 나중에 사이가 벌어져 헤어기긴 했지만 사촌과 결혼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일종의 자전적 소설이며 성장소설로 보기도 한다.


 제로옴과 알릿사의 사랑은 주변 친척들 대부분이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고 알릿사의 아버지 즉 제로옴의 큰 외삼촌 뷔꼴렝씨는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 하는 조카 제로옴을 마치 아들처럼 여기기도 한다. 뷔꼴렝씨는 알릿사 외에도 둘째딸 줄리에뜨 그리고 아들 로베르까지 두었으니 제로옴을 아들처럼 생각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제로옴은 알릿사 보다 세 살이나 아래이고 줄리에뜨는 제로옴 보다 한 살 아래정도여서 제로옴과 줄리에뜨의 사이가 오히려 결혼에 어울리는 편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도 한 동안 줄리에뜨가 제로옴을 짝사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에서도 결혼을 염두에 둔 처녀가 남자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은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알릿사는 수차례 제로옴의 호감표시 때마다 자신의 나이 많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더구나 알릿사가 나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다. 즉 신을 믿고 신을 위한 순수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와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신과 제로옴 사이에 번민하고 어느 때는 제로옴을 가까이 하다가도 다시 신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에 동생 줄리에뜨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내심 제로옴을 짝사랑하다가 제로옴이 자신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마음을 바꾸어 별로 탐탁하지 않은 남자지만 먼 친척 되는 사람인 에두라르 메시아르와 전격 결혼해 버린다. 제로옴은 알릿사의 마음이 변하기를 기다렸으나 알릿사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세월이 흐른 뒤  제로옴은 지난 일들을 길게 회상한다.


 반면 줄리에뜨는 내키지 않은 결혼을 했으나 남편 사업이 번창하자 현실에 만족하고 제로옴도 초대하기도 하며 비교적 행복한 생활을 즐기며 쓸쓸히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언니 알릿사와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1910년 대 당시 프랑스에 종교가 미치는 삶, 특히 남녀사랑에서 종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아마 그 시절에는 찬반 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 진화, 과학의 역할로 신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종교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소설은 빛을 잃고 단지 소설사의 한 줄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 50여 년 전 십대의 청소년 특히 감수성이 높은 소녀가 이런 소설을 읽었다면 몇 사람은 순수한 사랑과 고결한 신의 믿음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지만 지금 2018년 십대 여학생에게 이 소설을 읽고 느낌을 말하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퍽 궁금하다. 아마 몇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라 하거나 광신도라 할듯하다. 과연 신이 있기라고 하느냐? 또 신이 있다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번번이 실망시키다가 죽은 여자가 정상이냐고 되물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지금도 신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가톨릭의 신부와 수녀의 길을 걷고 불교의 승려가 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아직도 종교의 문제는 신념의 문제로 보통 사람에게는 난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