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시간이 스쳐간 뉴욕의 거리>를 읽고...

깃또리 2018. 5. 8. 08:58

<시간이 스쳐간 뉴욕의 거리>를 읽고...
이재승지음
시공사
2017. 5. 11.



 이 책을 쓴 이재승은 서울대학교 산업 디자인과 건축과에서 학사학위를 마치고 ‘원도시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다음 미시건 대학교에서 건축, 도시설계 석사과정 연구조교와 뉴욕과 뉴저지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다. 2008년 가을부터 MIT 도시설계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아시아 도시들의 환경 친화적인 성장’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책에 사용된 사진들은 여러 참고문헌에서 빌리고 일부는 직접 찍은 것이라 하며 종이에 연필로 그린 다음 채색한 그림과 종이에 수묵담채 그림들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부인 오유정씨가 그렸다 하며 현재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라 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내가 작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였으나 아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최근 다시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물었더니 서슴없이 뉴욕시라 했다. 아내는 두 번을 다녀왔는데 첫 번째는 여행으로 일주일 함께 갔었고, 두 번째는 딸 학교문제로 한 달 정도 머물기도 했는데 또 가고 싶다하여 기회가 되면 같이 가기로 하고 우선 뉴욕에 대한 책을 더 보기로 했다. 건축 전공자답게 뉴욕의 건물에 관하여 설계자와 건축양식 등을 소개하면서 도시와 건물의 상호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01. 맨해튼의 발원지, 로이 맨해튼과 월 스트리트


 16세기 말 스페인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새로운 항로와 대륙개척 경쟁에 뛰어들어 영국인 항해가 헨리 허드슨(뉴욕 옆을 흐르는 강 이름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에게 인도로 가는 새 항로 개척을 맡겼다 한다. 그러나 1609년 엉뚱하게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메나하타’(맨해튼의 기원)라 부르는 작은 섬에 도착하였고 1621년 단돈 24달러를 주고 이 섬을 구입했다 한다. 메나하타는 인디언 말로 ‘언덕이 많은 섬’이며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를 뉴암스텔담이라 불렀었다. 얼마 후인 1644년 해상활동이 왕성한 영국이 뉴암스텔담에 욕심이 생겨 군대를 파견하여 맨해튼을 차지하고 새 주인인 요크공작(English Duke of York)의 이름을 따서 뉴욕, New York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02. 맨해튼 그리드와 브로드웨이의 변주곡


 1811년 뉴욕의 계획적인 개발을 위해 세 명의 위원들이 ‘위원들의 계획, Commissioner's Plan'을 세우고 동서로 12개의 애비뉴, Avene 남북으로 152개의 스트리트, Street로 나누고 각 블록은 200~300미터 x 70미터의 긴 사각형에 다시 8x 30미터 조각으로 재분할하여 구획하였다.
 단 여기에서 예외를 둔 것이 브로드웨이, Broadway 이며 비스듬한 이 길은 스트리트를 지나가면서 규격에서 벗어난 색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한다.


03. 욕망의 아이콘, 타임스 스퀘어


 타임스 스퀘어는 브로드웨이 애비뉴, 7번 애비뉴 그리고 42번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뉴욕타임스 발행인 아돌프 옥스가 뉴욕 타임스 사옥을 옮겨 오면서 이곳의 공식 이름이 타임스 스퀘어로 바뀌고 곧이어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한다. 이곳은 1970년대부터 1990년 초 까지 맨해튼의 쇠퇴와 타락의 상징이었으나 미국 경제회복과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정화운동인, Clean up Campaign으로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다. 이곳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성공으로 이끈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케츠, Cats>, <라이언 킹, The Lion King>이 그동안 수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았다 한다.


04. 짙푸른 에메랄드 센트럴 파크


 그리드 계획에 따라 성장하는 맨해튼에 휴식과 여가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1857년 센트럴 디자인 설계대회가 열려 프레데릭 올름스테드와 영국 건축가 캘버드 보가 공동 작업한  그린스워드 플랜, Greensward Plan이 당선되었다. 이 계획안에서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동서에 자리한 Upper East Side와 Upper West Side를 연결시키는 도로가 공원에서 보이지 않도록 차도를 경사로로 계획하여 지면보다 낮게 설계한 일이다.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공원주변에 살고 있는 백만장자들이 해마다 많은 돈을 기부하여 공원 유지관리에 큰 도움을 준다 한다.


05. 그림자의 도시 할렘


 당초 섬 남쪽 할렘은 한동안 부유한 백인들의 목가적인 주택지였으나 1880년대 들어 주택건립이 폭주하여 유대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뉴욕에 살던 흑인과 미국 남부 흑인까지 밀려들어 흑인 밀집지역이 되었다 한다. 1935, 1943년 흑인 폭동이후 백인들이 떠나 점차 슬럼화로 범죄 온상지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할렘 125번지 스트리트는  2007년 미국도시계획협회가 지정한 좋은 거리 10곳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독특한 흑인문화 중심지로 이제는 한 번 꼭 방문해야 할 곳이라 하였다.


06. 애비뉴의 기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공사기간이다. 보통 2년 걸렸다 하는데 이 책에선 18개월이라 했다. 사실 18개월이나 2년이나 별 차이가 없으며 102층의 건물을 이 기간에 세운다는 것은 지금도 불가능하며 그래서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건물의 1층 로비 벽엔 세계 10대 불가사의 하나로 이 빌딩을 포함 시키고 있다. 또한 100층이 넘는 건물이기 때문에 지하층이 최소 10층 이상은 되리라 생각하는데 단 2층뿐이다. 그 이유는 맨해튼은 바위섬이고 건설 당시엔 암반을 제거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2008년 이 빌딩을 구경 갔을 때 사무실로 쓰고 있는 기준층 모습이 궁금하여 경비원에게 부탁하여 특별히 윗 층에 올라가 보았다. 지금 기억나는 일로는 바닥 마무리 재료가 인조석 물갈기여서 퍽 놀랐다.  인조석 물갈기는 예전에 건물용도에 관계없이 두루 선호했던 재료로 현장에서는 일본 용어인 도끼다시(硏出)라 하여 이런 영향도 있어 일본사람들이 창안한 시공법으로 지레 짐작하고 지냈으나 미국의 옛날 고층건물에서 이를 발견하고 서양에서 오래 전 사용하였으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공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튼 마침 유엔 빌딩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 콘도미니엄에 잠을 자기도 하여 가까운 이 빌딩을 걸어서 갈 수 있어서 낮과 밤, 두 번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 뉴욕 시내를 바라 본 기억이 잊혀 지지 않는다.


07. 도시 속의 도시, 록펠러 센터


 뉴욕엔 규모가 큰 빌딩이 많지만 건물을 도시라고 부른 일은 록펠러 센터뿐이라 한다. 그 이유로는 19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졌고 도시 속에 어우러져 어디까지가 록펠러 센터인지 알아보기 어려우면서 다양한 시설을 포함하고 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라 한다. 즉 기본은 사무실이지만 대형 공연장인 라디오 시티 뮤직홀과 NBC 스튜디오, 쇼핑몰, 식당, 아이스 링크, 전망대 등이 어우러져 도시와 잘 융화를 이루는 시설이라 한다.


08. 도시 공간의 또 다른 삶, 시그램 빌딩


 1954년 캐나다 주류회사 시그램 빌딩 설계를 1937년 독일 나치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미스 반 데로에가 그의 나이 68살에 디자인하였다. 미스 반 데로에는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함께 세계근대 건축설계 분야에서 세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그가 내건 ‘Little is More, 적은 것이 좋다’는 ‘단순성의 미학’을 주창한 언급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그램 빌딩은 모더니즘 건축의 모범이자 정형으로 아직까지도 이 건물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사무용 건물은 찾아 볼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단한 건물이 탄생한 배경에는 그에게 디자인을 맡긴 건축주 로세프 시그램과 그의 아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09. 도심 속 오아시스, 브라이언트 파크


 지금까지 거론된 명소들은 뉴욕을 소개하거나 영화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곳이라 대강 아는 곳들인데 브라이언 파크는 내겐 생소하다. 1966년 <뉴욕 타임즈>는 이곳을 ‘대재앙 지역’이라 할 정도로 마약상, 마약 중독자, 부랑자, 창녀, 주정뱅이의 집합소였다 한다. 그러나 뉴욕시 당국의 노력으로 지금의 뉴욕 속의 오아시스 역할로 여겨지는 곳이라 한다. 뉴욕을 방문하게 되면 꼭 가 볼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10. 고집쟁이 할머니의 위대한 투쟁, 소호


 수년 전부터 SOHO는 Small Office Home Office의 약어로 작은 사무실 혹은 가정집을 사무실로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쓰였으며 뉴욕의 SOHO 거리도 나는 별 생각 없이 같은 말인가 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South of Houston Street의 줄임말로 후스톤 스트리트의 남쪽 이라는 말로 원래는 공업지역으로 철제 장식을 정문에 사용한 건물이 명칭으로 굳어졌다 한다. 당초 평범하고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가 1960년 중반 로버트 모지스의 제안으로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세워지자 소호지역이 대부분 헐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 <미국의 대도시의 삶과 죽음, The Dead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y>의 저자 제이콥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속도로 계획을 반대하며 소호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계획안은 철회되고 기존 천장이 높은 장점을 지닌 건물들이 살아남아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이 되기도 하는 등 뉴욕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명소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부유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뉴욕의 아이콘이라 한다.


11. 보헤미안 마을, 그리니치 빌리지


 이곳은 17세기 맨해튼에 정직한 네덜란드인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소위 보헤미안 마을이 되었다 한다. 이곳을 거쳐 간 예술가들로 극작가 유진 오닐,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뮤지션 밥 딜런을 들었으나 지금은 이곳도 임대료가 비싸 가난한 예술가들은 뉴욕 밖으로 밀려나 옛 추억만 남았다 한다.


12. 영원한 꿈을 꾸는 브루클린 다리


 브루클린 다리 설계는 독일 베를린에서 공학을 공부한 다음 미국으로 이주한 엔지니어 존 뢰블링이며 그는 독특하게도 헤겔 철학을 공부하여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지녔다 한다. 1876년 설계를 맡아 기본 설계를 마치고 강 가운데 세울 타워의 위치를 정하려고 조사 작업을 하는 도중에 발에 부상을 당하여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다. 뢰블링의 아들이 대신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받아 건설작업에 참여하였으나 과도한 수압과 공기부족 탓으로 병을 얻어 아파트 침대에 누워 망원경으로 작업 현장을 지켜보며 공사를 지시하고 세부 설계 마지막 부분까지 기록하도록 하였으며 개통까지 지켜보았다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수압과 공기부족 탓’이라는 말은 교각 기초공사가 물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잠함기초공법이었을 것이며 이 때 케이슨 작업으로 잠수병이라고 하는 ‘잠함병’을 얻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직업정신과 사명감이 철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브루클린 다리의 타워가 고딕양식이어서 현수교 양식과 조화롭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13. 맨해튼의 미래 그라운드 제로


 416미터에 110층 쌍둥이빌딩이 세계무역센터가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붕괴되면서 2843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 자리에 10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계 건축설계자 리베스킨트의 설계안에 따라 one World Trade Center가 건립된 이야기를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