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서른 살에 미처 몰랐던 것들>을 읽고...

깃또리 2018. 5. 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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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미처 몰랐던 것들>을 읽고...
김선경 지음
걷는 나무
2017. 6. 25.


 오랜만에 일요일 도서관에서 창문 밖 흐린 하늘을 보며 이 글을 쓴다. 지난 대략 15년 동안 매달 두 세권의 이런저런 책을 읽었는데 대부분 주말 도서관 나들이가 큰 도움이 되었었다. 그러나 올 해 벌써 6월 말, 한 해의 반이 지났으나 기껏 일곱 권을 읽었을 뿐이다. 첫 번째로는 영문판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edison County>를 연이어 세 번 읽느라 다른 책을 보기 어려웠고 두  번째는 조금 소원하게 지내던 아내와 올 초부터 주말 나들이가 잦아서였고, 세 번째는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가 5월과 6월에 걸쳐 한 달 휴가를 우리 집에서 보내는 바람에 책을 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작년까지는 책을 보기도 했으나 요즘 버스에 오르면 곧 잠이 들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아직 에어컨을 켜기도 이른 시기라 후덥지근한 방에 있다가 쾌적한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이렇게 앉아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고 행복하다. 별 생각 없이 책 다섯 권을 꺼내왔다.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 The Core of Darkness> 한글판, E. A. 포우의 <단편 집>, 김훈의 글에 허용무 사진의 <원형의 섬, 진도>, 프란츠 카프카의 <비유에 대하여> 그리고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Animal Farm>이다. <비유에 대하여>를 제외하고 네 권 모두 예전에 책 겉장을 열고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대출하려다 다음으로 미루어 두었던 책들이다. 사실 <어둠의 심연>은 오래 전에 읽었었다. 나머지 책들은 진작 읽었어야, 아니 읽고 싶었던 책들이지만 모자라는 시간도 고려하지 않고 욕심스럽게 여러 권 가져온 듯하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읽다가 대출기간을 연장하거나 재 대출해도 괜찮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동네마다 곳곳에 이런 도서관이 문을 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도서관 출입이 잦은 사람들끼리 나누었던 이야기인데 도서관 사서를 비롯하여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무표정하다는 불평을 했었는데 요즘은 비교적 표정도 밝아졌고 친절해져 어쩐 일인지 궁금하며 아무튼 좋은 변화다.


 이 책 <서른 살에 미처 몰랐던 것들>은 우리 아파트 사는 누군가가 버리려 내 놓은 책인데 표지도 깨끗하여 손에 들었다. 책 제목이 내게는 너무 동떨어진듯하여 주변 젊은 사람에게 줄만한 책이라 생각하면서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생각과 달리 내용이 재미있고 충실하며 저자 김선경의 소위 내공이 깊다는 생각도 하였다. 40 초반의 여성으로 한마디로 박식하고 사려가 깊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읽고 누군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누구에게 주기가 좀 아까운 책이라 생각하여 타협안으로 주변 40대에게 책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은 다음 다시 한 번 읽고 그때 책을 보관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저자는 어릴 때 자기 집 주소 끝에 산이 붙은 비교적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은 화목하고 따뜻한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지만 졸업하고 출판계에서 직장을 시작하여 <좋은 생각>, <좋은 친구>, <행복한 동행>, <문학사상>을 거치며 많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  교정, 유명인사 인터뷰 일을 하였다 한다. 월간지 <작은 숲>을 직접 창간하고 운영하였으나 마음 같이 되지 않아 곧 문을 닫고 이 책을 썼다 한다. 책 내용이 대부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좋지만,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을 추려 옮겨 보았다.


<안전한 길은 죽은 자의 길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라 했다 한다. 이걸 줄여서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 라고도 한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사르트르가 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또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아들 로빈슨이 바다 항해를 좋아하는 걸 알고 그의 아버지는 “....인생의 큰 재난은 상류층과 하류층 사람에게 닥친다. 중산층은 불행한 일을 제일 적게 겪을 뿐만 아니라 하루 아침에 망하는 기복도 없어. 상류층 사람들처럼 방탕한 생활, 사치, 무절제 때문에 곤란을 겪을 일도 없고, 하류층 사람들처럼 고생할 일도 없지. 그러니까 중산층 사람들은 육체적 고생이나 정신적 불안을 겪을 일도 없단다. 중산층의 삶이야말로 온갖 미덕이나 즐거움을 누리기에 딱 좋다.”

 한마디로 중산층의 장점을 강조한 말인데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세상의 여러 풍상을 겪은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이지만 꿈과 야망이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안이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를 둔 로빈슨이었으나 결국 62세라는 노년의 나이에 ’인간은 위험한 선택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에 전심전력할 때 존재감을 느낀다.“라는 생각을 하는 그는 다시 배에 오르는 모험을 했다 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런 도전과 모험을 사랑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의 힘에 의해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이루며 진보하였다고 생각한다.


<가질 수 없으면 즐기면 된다>

 1977년 사시사철 따뜻한 미국 플로리다에 6센티미터나 되는 폭설이 쏟아져 프레나 할머니는 자신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눈이라 생각하여 눈덩이를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한다. 허리케인으로 전기가 끊기는 등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33년 동안 잘 보관하여 금방 녹아 사라지는 눈을 자기만의 보물로 만들었다 한다. 남들이 보면 하찮은 물건이고 시시한 추억이지만 이 할머니는 그 눈을 볼 때마다 눈 속에서 뒹굴고 함께 즐거워했던 추억을 되새겼다 한다. 이렇듯 평범한 생활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하다 했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 소유는 잠깐일 뿐이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언젠가 두고 떠나야 한다. 나도 과거를 뒤돌아보고 앞을 헤아려보면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은 헛되고 오직 기억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또 큰 기쁨 하나보다 작은 기쁨 여러 가지가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말도 기억해 둘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엄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생활에는 소유에 집착한다. 모두 사람마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노년을 위해서, 능력 없는 자식을 위해서 등등인데 사실은 대부분 걱정이 지나친 경우가 많다.


<나의 단점과 열등감은 남에게 없는 나만의 재산이다>

 사실 단정적인 말보다 나의 단점과 열등감은 남에게 없는 나만의 재산이 될 수 있다. 가 더 적절한 것 같다. 왜냐면 모든 단점과 열등감이 재산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롤프 엔센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 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의 부자다.‘ 퍽 공감이 가는 말이다. 오늘 날 이 땅의 많은 중장년들이 저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이제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와 이런 위치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이를 싫어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너무 자주 내세우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윗세대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일도 역시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성공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다>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의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를 들었다. ‘91세까지 아주 오래도록 싱글로 멋지게 살다간 여성’이라고 소개하였다. 서양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도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혼자 있을 때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 차이를 찾아 볼 수 있다. 제일 먼저 소인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만 군자는 혼자일 때도 고요하고 진중하다라 하였다. 군자는 홀로 깊은 사색하는 즐거움을 가지고 외로울 겨를도 없다 하였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기쁨을 누린다. 그러고 보니 크게 이룬 것은 없어도 책 읽는 습관을 길러 혼자 지내는 시간이 즐거운 일은 큰 보람이지만 군자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쉽다. 대동소이한 내용이 이어진다. ‘인생에서 자기도취는 어는 정도 필요하다. 그건 내 욕망에 충실하다는  뜻이며, 혼자서도 풍요롭고 창조적인 인생을 만들어가는 에너지가 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내 스스로 자기도취에 얼마간 빠졌다 생각하고 지냈으나 이런 문장에 보니 반갑다. 그러나 심한 정도에서 벗어나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


<삶은 원래 힘든 것이다. 엄살떨지 마라>

 부모 없이 지내는 어려운 소녀에게 혼자여서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저 혼자가 아니거든요. 동생도 할머니도 있어요.’라 했다 한다. 그래서 질문한 사람이 머쓱했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주위를 살펴보면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누구나 한두 가지씩 크고 작은 삶의 문제를 갖고 살아간다. 그들 중에는 힘들어 죽겠다. 어렵다. 불행 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자청해서 스스로를 힘든 지경으로 내몬다고 할까.’ 이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사람은 누구와 비교할 때 비로소 불행이 시작된다.’ 항상 새겨둘 경구이다. 내 주변에도 똑 같은 부모를 두고 있는 형제의 삶이 너무나 다르다. 형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다시 직장생활하며 야간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반면 동생은 항상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하루하루 젊음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 제 3자인 내가 보기엔 똑 같은 보모, 똑 같은 사회, 환경이지만 형제가 다르게 지내는 것이 큰 의문이다. 설령 이 글을 동생이 읽는다 해도 아마 또 다른 그럴듯한 변명과 불평을 늘어놓으며 나를 비난할 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로 40 중반을 넘어 선 어느 집 아들도 자신을 잘 교육시키지 못했다며 부모를 원망하며 직업도 가지려 하지 않고 결혼도 포기 한듯 지내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인간의 심리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마지막 부분은 <진정한 삶의 스타일은 어려울 때 만들어 진다>

 사람의 스타일은 ‘소설가와 시인이 가진 자신만의 ’문체‘, 화가의 ’화풍‘, 작곡가의 ’작풍‘과 비슷하다.’라 하며 삶의 스타일이란 무수한 변화하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다스리고 가꾸면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라 했다. 아울러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 구절에도 큰 공감이 간다. 쉽게 떠오르는 사람으로 18년간 귀양살이를 통해 수십 권의 책을 써서 조선 3대 저술가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다산 정약용선생, 거세 형이라는 혹독한 궁형과 옥살이 속에서 중국의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 홀어머니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어렵게 지내고 인종차별 속에서도 흑인 최초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퇴임 후에도 인기가 높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범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책은 누구에게도 한 번 읽고 깊이 생각해 볼 다양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어 추천하고 싶다. 즐거운 책읽기였다. <좋은 생각>이 발행부수 100만 부를 돌파할 즈음 자신이 직접 펴내는 <작은 숲>이란 월간지를 만들었으나 생각과 달리 잘 되지 않아 25호를 끝으로 문을 닫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흔 두 살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 한다.


 원래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의 신변잡기를 내용으로 하는 소위 에세이를 읽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왜냐면 대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 자기 자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비교적 책에 공을 많이 들였으며 평소 출판업에서 일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다수 만나 그들의 생각과 장점을 정리해 두었다가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써서 유익하고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사실 요즘 시대적 분위기가 책 선물 자체가 예전과 달라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용기가 없다. 책 선물이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를 가르치려느냐?' 는 오해를 부를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점점 책 읽는 일을 꺼리는 분위기여서 본의 아니게 부담을 주는 경우도 걱정이 된다.

 다시 말해 '책이 좋으면, 당신이나 실컷 읽어라!'는 냉소에 가까운 반응이 있어 아쉬운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손에 든 책이지만 책을 들고 있었던 시간이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