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VS 폴 고갱>을 읽고...
브래들리 콜린스 지음
이은희 옮김
다빈치
2007.12.20.
고흐와 고갱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특히 후기인상파로 분류하며 고갱은 고흐보다 다섯 살 위이다. 고갱은 중남미에서 태어나 선원생활과 금융회사를 다니며 주식으로 돈을 버는 등 화가가 되기 전 사회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였으며 고흐와 만난 시점인 1886년(고흐 나이 33세)에 이미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두었었고 화가 위치로도 이미 파리 화단과 화상들에게도 조금 알려져 그림을 팔기도 하였었다. 즉 고갱은 그 때까지 이름 없이 지내는 고흐에 비하여 여러 가지로 유리한 입장이었으며 이런 저런 상황으로 고흐는 고갱을 선배의 위치를 넘어 스승을 대하는 기분으로 존경하였다고 한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 파리에서 활동하며 지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인간적으로는 서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미술사적으로 흥미 있는 관계로 후세 미술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한다. 이 책을 지은 브레들리 콜린스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는 박사학위를 받은 미술사학자이며 정신분석학을 미술연구에 적용하여 날카로운 해설과 독특한 주장을 내세우는 인물이다.
고흐나 고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과 상호관계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몇 년 전에 사 놓았는데 2007년 후반부터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대규모 고흐 회고전을 맞아 이 책을 4년 만에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사실 얼마 전에<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이란 제목의 책을 읽고 아직 고흐의 삶에 심취하여 빠져 나오기 전에 고갱과 고흐에 관련된 책을 읽어 더욱 이해가 쉬웠으며 또 다른 각도에서 반 고흐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흐는 1886년경 파리로 자리를 옮겨 화상으로 일하고 있던 동생 테호의 몽마르트 집에 함께 지내는데 이 시절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화가들과 만나게 되고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기도 하며 고갱과도 자연스럽게 친교를 맺었다. 고흐는 고갱의 그림을 좋아하였으며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자세를 표시하였다. 고흐는 태호와 떨어져 지낼 때는 몰랐으나 막상 같이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일로 의견이 달라 다투게 되어 고흐는 남쪽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뜻을 같이 하는 화가들과 함께 운영하며 지내는 “화가 공동체”를 형성하기를 꿈꾸게 된다, 사실은 자신이 좋아하지만 가보지 않은 동양의 일본과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던 고흐는 프랑스의 남부지역인 프로방스의 아를지방으로 내려가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고갱이 내려오도록 설득한다.(1888년.2월19일)
아를에 도착하여 몇 달은 호텔에서 지낸 고흐는 노란 외벽의 집을 얻어 내부를 수리하며 고갱에게 아를에 오라 연락하고 고갱이 사용할 방의 벽에 붙일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들뜬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고갱은 아를에 내려오는 일을 그리 탐탐치 않게 생각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고흐의 동생인 테호가 자신의 그림도 몇 점 팔아 주었고 앞으로 기대도 있어 마지못해 내려온다.(1888년10월 23일)
고갱은 아를에 도착하였지만 처음부터 고흐의 마음과 달리 정착할 마음은 없었다. 고흐와 고갱은 한동안 잘 지내는듯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에 대한 의견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차이가 나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갱과 고흐와 관련하여 가장 엽기적인 사건으로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고갱과 함께 좋아했던 어린 창녀에게 자른 귀를 내보여 주어 그녀를 기절하도록 만들어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고갱은 놀라기도 하고 마침 떠날 구실도 마련되어 1888년 12월 26일 아를을 떠났다.
약 두 달 동안 고흐와 고갱의 동거는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였는데 아무튼 토론하고 다투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미술세계도 뚜렸이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으며 서로 비난하면서도 상대방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기도 한 의미 있었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저자는 편지와 주변 인물들의 회상과 자료 그리고 고갱의 자서전과 함께 그들의 그림을 연구 분석하여 몇 가지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두 사람 서로에 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가졌으며 고갱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자이지만 예술적으로는 귀족적이었으며 숭고함, 아름다움, 우아한 취미에도 서열이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졌다. 반면 고흐는 평범함에서 완벽을 추구하였고 소수가 아닌 다수의 대중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려 했다. 또한 종교적으로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로테스탄트적인 문화에 자라 자연과 공동체와 고귀한 노동을 강조하였지만, 또한 기독교적 주제보다 자연의 묘사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고갱은 가톨릭 성향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신을 향해 올라가고 영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수직적 개념의 소유자였다.
후일 고갱과 고흐를 대비하여 순수/세속, 실제/상상, 무의식/계산, 정직/교활 더 나아가 착한 고흐/ 못된 고갱으로 까지 두 사람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실은 고흐가 죽고 한 참을 더 살다 죽은 고갱 생전에도 이러한 소문이 퍼져 고흐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고갱이 테호에게 쓴 편지에서 세간에 떠도는 이런 말을 농담처럼 스스로 인용하기 까지 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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