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상기

First Step 첫 발자국

깃또리 2008. 1. 11. 20:00
 

 

First Step after Millet 밀레의 첫발자국

 

Von Gogh's Hero 고흐의 우상

 

고흐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쟝 프랑소와 밀레의 그림 모사를 마음 먹었다. 밀레는 그의 우상이었다. 39살이나 년상으로 프랑스 농촌에서 테어난 이 유명한 화가는 그의 일생 대부분을 가난한 농민을 그렸다. 고흐가 파리에서 밀레의 큰규모의 전시회를 처음 보았을때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테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에게 하여야 했던 이야기를 썼는데 "신발을 벗어라 네 자신이 서 있는 성스러운 땅을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한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에게 밀레는 '위대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 '이었다. 고흐는 밀레의 예술작업에서 '진실과 소박'을 힘써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밀레를 '아버지 밀레'라고 까지 하였다. 밀레의 흑백 그림은 고흐시대에 인기가 있었다. 고흐는 몇 십점의 그림과 밀레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은 그의 표현처럼 '소중한 진주'가 밀레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대단하게 높은 가치로 평가하였다.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큰 스켓치로 만들면서 밀레의 유화로부터 인물을 따라 그려서 사람들을 스켓치하는 것을 배웠다.

 

Adding Colour 덧 칠하기

 

가난한 농부를 주제로 한 인쇄물로부터 켄버스에 따라 그리는 일은 쉬웠고 그래서 고흐는 그런 그림을 수 십장 완성하였다. 그는 각각의 인쇄물이 '주제와 같이......위치하여'마치 종이에 인쇄된 조각들이 한 사람 인물이거나 하나의 꽃병이 되었다. 고흐는 이런 그림을 만들면서 자신이 밀레를 도와 주는 것이라고 느꼈다. 거의 5년이란 밀레의빠른 죽음이었기 때문에 밀레가 스켓치를 유화로 할 시간이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뜻하였다. 켄버스에 그림을 복사하기 위해 분할하여 선을 긋는 전통 방식을 사용하여 고흐는 밀레의 복사그림을 정확하게 만들었다. 먼저 그는 켄버스와 인쇄물에 수평과 수직줄을 그렸다. 각각은 똑같은 사각 구획판을 나타냈다. 이런 방식은 한 번에 전체 그림을 복사하기 보다 켄버스 위에 한번에 한 번씩 각각의 사각형 안에 있는 이미지 부분을 복사하기가 훨씬 쉬웠다. 이 작업은 연필로 하였다. 물감을 칠하는 것은 마지막 일이었고 이런 작업은 고흐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나의 붓은 마치 바이올린 위의 활이 움직이듯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나의 진정한 즐거움이다."라고 편지에 썼다. 유화는 흑백 인쇄물과 너무 달라서 화가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이 작업은 인쇄물을 복사했다기 보다 새로운 언어로  번역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