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예불

깃또리 2007. 10. 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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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지역 소백산에 깊숙이 파묻혀 서울이나 부산 기준으로 쉽게 가보기 퍽 어려운 위치에 있다.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무량수전 (고려13세기,국보 18)이라고 배웠으며 (물론 최근에는 그곳에서 가까운 봉정사의 극락전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히고 있다. 마침 부산에서 서울 오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오랫동안 기대하던 부석사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1월 중순이라 바람은 매서웠으나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아 아직 완전 개통이 안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안동까지 왔다. 국도로 접어들어 부석사 입구에 도착하여보니 저녁 4로 짧은 겨울 해가 서산에 지는 것을 보며 좌우 과수원을 끼고 오르막 길로 절을 향하여 혼자 걷는 기분은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대하던 좋은 곳을 마침내 찾아간다는 즐거움으로 흥분마저 일어났다. 당간 지주석을 지나 절에 당도하여 일단 숨 고르기를 하고 우선 해지기전 무량수전을 볼 요량으로 단숨에 여러 계단을 올라 무량수전 앞마당 석등 곁에 서서 단정하고, 우아하고, 안정감 있으며 수수하면서도 의젓한 무량수전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좀더 무량수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곳을 찾아 오른쪽 석탑이 있는 작은 오르막 길에 올라 약간 내려다 보게 되는 지점에 서서 무량수전을 찬찬히 감상할 수 있었다. 사위는 이제 어스름이 내리고 겨울철이라 인적도 끊긴 소백산자락에 안겨 있는 무량수전을 오래오래 보고 있노라니 수 백 년 전 우리 옛 조상들의 뛰어난 미감과 건물의 위치선정에 대한 뛰어난 안목 그리고 이렇게 외진 곳에 이만한 규모의 구조물을 축조한 노력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다음날 다시 보기로 하고 내려와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소백산 능선들이 아스라히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치어서 한 폭의 선경을 그린 옛 화가의 산수화를 보는듯한 정경에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잘 곳을 궁리하며 안양문을 지나면서 사하촌으로 내려가다 불현듯 오늘밤 절 방에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거두절미하고 주지스님을 찾았다. (어느 절이든 최고 스님은 주지 스님일꺼라는 상식을 가지고 있던 관계로) 그러나 주지스님은 출타 중이라서 일순 희망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총무스님을 찾았는데 다행이 예상이 맞아 들어 총무스님이 계셔서 불문곡직하고 하룻밤 재워줄 것을 간청하였는데 혹시 나가는 절이 있느냐, 절에서 자 본일이 있느냐 물었으나 그런 일은 없으나 경내에서 하는 예식에 따르겠다 하여 작은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피곤하기도 하여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스스르 잠이 들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스님 한 분이 저녁 공양시간이라 하였다. 식당에 갔더니 삼삼오오 그리고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여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저녁 공양을 받았다. 다시 방에 들어와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눕히니 곧장 잠이 들었다. 잠결에 범종소리가 울리고 문밖에서 부산한 인기척에 눈을 뜨고 나가 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십여명이 저녁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줄지어 걸어가 나도 대열에 끼었다. 나는 무심코 뒤를 따라 갔는데 놀랍게도 낮에 문밖에서 찬탄의 눈으로 들여다 보았던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놀라움과 기쁨으로 정말 경내 잠을 자려고 했던 생각을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며 하얀 소조불상(국보 45)을 향해 남들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물론 불교예불은 생전 처음이라서 일행의 제일 뒤에 자리를 잡고 무조건 앞사람들을 따라 여러 차례의 절을 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를 다하였다.

 

예불을 마치고 무량수전을 나오니 마침 보름이어서 둥근은 달은 중천에서 금방이라도 금속성 소리를 쨍하고 울릴 것처럼 겨울밤 맑고 찬 공기에 둥실 떠 있었고 낮에 본 능선들이 달빛아래 겹겹이 포개져 있는 광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었다. 하루 종일 승용차 운전을 한 탓도 있고 감격과 흥분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아서인지 피곤을 느꼈으나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이 아름다운 달빛에 휩싸인 주변 풍경에 취해 무량수전 뒤편에 있는 산신각을 가보기 위해 낮에 봐 두었던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칠성각, 산신각이 있어 잠시 보고 있노라니 우선 사람이 얼씬도 않고 귀신에 연관된 건물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재촉하여 내려와 환한 달빛 아래 절 입구 사과나무 길을 걸어보다가 방에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하였다.

 

얼마를 잤는지 잠결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척이 있어 다시 눈을 뜨고 보니 새벽 예불시간인듯하여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일행을 따라 다시 무량수전에 들어 가 수 없는 절을 밤 예불 때보다는 능숙하게 하고 난 후 새벽잠을 다시 하고 일어나 아침 공양을 마친 후 너무 이른 탓이라 다시 방에 들어 눈을 붙인 후 일어나 본격적으로 부석사를 돌아보기로 했다.

 

대부분 사찰의 가람들이 좌우대칭 또는 일직선을 축으로 좌우로 배치되는데 부석사는 특이하게도 축이 틀여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었으며 안양루 좌우편의 석축은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저렇게도 멋을 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안양루 현판은 승만 대통령의 글씨라고 알고 있어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 보았는데 여성들 글씨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필체였다.

 

아침 햇살에 단아한 모습으로 의젓하고도 기품 있게 나 않아 있는 무량수전을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니 시공을 뛰어넘어 당시의 의상대사는 요즘으로 보면 사찰건축의 설계자, 공사감독, 감리자이기도 했으며 공사책임자였을 것이며 사찰의 위치는 물론 산 중턱을 일부 깍아야 했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참작한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사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목조건물이 700년 이상의 풍우, 지진, 부식, 온습에 이렇게 견실하게 오랜 세월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한 과학자이고 공학자였으리라 하는 생각에 미치자 또 한 가지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생각하면 모든 것을 인력에 의존해야만 했던 그때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환영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런 자연 지세에 무량수전이 있었기 때문 각종 전란으로 불타고 소실된 수 백 년 동안에도 다행히 이렇게 훌륭하게 보존되었으리라. 그러나 오랜 기간 화마에 견디어 온 것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지금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나 같은 문외한이 자유롭게 출입도 하고 특히, 야간에는 변변한 보호대책도 없이 출입하는 일은 퍽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세계각국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이나 정신이상자의 소행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손상을 입는 경우가 흔할뿐더러 무량수전은 목조 건축물이기 때문에 더욱 보호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며 우리 후손에게 두고두고 보여줄 정말 귀중한 선조들의 빼어난 건축물이므로 한 번 아차 하여 훼손된다면 억 만금을 들여도 재생이 불가능한 문화유산에 속하므로 정부 및 관련 기관에서는 시급히 보호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하루 밤 잤던 방을 나와 총무스님을 찾았더니 차 한잔하고 가길 원해시간 가량 부석사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전해 듣고 굳이 밝히길 꺼리는 스님의 법명이 등운이라는 것까지 알고 난 후에 불전함에 얼마간의 시주를 바치고 언젠가 다시 볼 것을 기약하고 조사당, 응향각의 배웅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무량수전에서의 예불을 떠올리면 부석사를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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