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한국의 정체성>을 읽고...

깃또리 2007. 7. 27. 20:03

<한국의 정체성>을 읽고...

탁석산 지음

책세상

2007.07.28,

 

 

 저자 탁석산은 1956년생으로 이제 나이도 50을 넘겨 세상의 이치도 충분히 깨닫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어서 소위 내공이 깊은 인물이라 생각한다.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나 부전공 철학에 더 흥미를 느껴 ‘흄의 인과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여 여러 권의 철학서를 지었는데 특히 <언어분석철학의 종언과 한국철학>이란 다소 긴 제목의 논문을 쓸 당시 이 책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책은 제1장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제2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제3장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나뉘었다. 나는 책 앞머리의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가장 재미있는 부분으로 여기는데 왜냐면 곳곳에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있으며 아무튼 “그 날 얻어먹은 맥주 값을 하기 위해 탁 씨는 책을 쓰기로 했다”는 마지막 구절은 딱딱한 본문을 끝까지 읽도록 하는 유혹이 되었다. 먼저 저자는 정체성이란 말이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간단한 말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의 난제에 속하며 유명한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예로 들어 정체성과 동일성의 확립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정체성이 형이상학의 문제라고 인식했어도 정체성 파악을 위해 주체성과 구별해야 하며 실제로는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정체성과 주체성의 복잡한 구별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자생성이란 개념으로 두 어휘를 아우르려는 시도도 소개하고 있다. 정체성은 개인과 집단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는데 그래도 개인은 손에 잡히는 개별성의 실체여서 파악이 되지만 ‘한국의 정체성’과 같이 집단의 정체성은 실체의 규명이 어려운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단 시작한 일이라 개별자의 정체성 확보를 통하여 유비적으로 한국의 정체성 확보하는 방법을 저자는 택하였다. 저자는 한국의 정체성으로 제일 먼저 한국어(한글)를 둘째로 한국에 관련된 각 분야의 공통 속성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제2장에서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 ‘인간’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인간성 회복’을 비롯하여 ‘인간이 나쁘다 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사실 인간, 인간성은 추상 명사이므로 범주를 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연구실, 체육관, 본부 사무실, 도서관, 강의실 등은 보여 줄 수 있지만 막상 할머니가 대학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 대학을 꼭 집어 설명하기 힘들 듯이 개별 인간은 만져보고 평가할 수 있어도 인간을 정의하고 평가하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라별, 시대별, 연령별, 성별, 종교별로 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준도 없다고 할 정도로 추상적이라는 주장이다. 덧붙여 보편성이라는 흔한 어휘의 사용도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한국적인 것을 따질 때 세계적, 보편적, 한국적이란 말을 함께 사용하게 되는데 저자는 차라리 보편성을 부정하더라도 한국적 특수성을 발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지 말고 차라리 세계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미국적이든 일본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에 흡수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라고 하고 있다. 구체화되지 않은 보편에 매달리다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왜냐면 공통된 속성을 조사하는데 시일이 많이 소요되는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 장에서 한국의 정체성 판단기준을 제시하여 앞으로 정체성을 찾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했는데 간단히 요약해 본다.

 

1. 고유성

 

 1) 원조 콤플렉스 :시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2) 이중 잣대 : 중국-한국-일본, 미국-한국-일본, 미국-한국의 관계에서 문화 전파가 한국 중심 사고에 몰입되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문하고 있다.

 3) 고유성의 의미: 개성에도 일정 수준의 격이나 미를 갖추어야 한다.

 

2. 창의성

 

창조적 수용이란 무엇인가 고찰이 필요하다.

 

3. 정체성 판단의 기준

 1) 현재성

 2) 대중성

 3) 주체성

 

 끝으로 책의 뒷 표지에 실린 원조, 현재성, 대중성에 관련한 글이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와 마지막으로 적어 본다. "우리는 시원을 따지는 습관이 있다. 시원을 곧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은 정체성 판단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다. 현재 우리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의 정체성 판단을 위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것도 재현되어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의 것이다. 지금 존재하지 않은 것들의 시원을 탐구하여 우리의 것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우리의 정체성 판단의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비롯되었든 일본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단 우리의 것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면 대중의 지지와 호응이 없다면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의 한국인이 즐기고 부르는 판소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필의 노래가 더욱더 대중적이므로 조용필의 노래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서편제> 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