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상기

빈센트 반 고흐

깃또리 2006. 8. 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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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cent Van Gogh

 

 

 

사람은 누구나 지난 일을 뒤돌아 보고 사소한 실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잘못에 가슴을 치는 후회를 한다. 순간의 판단 부족으로 평생 다시 없는 일생을 좌우 할 유리한 제의를 받아 들이지 않아 좋은 기회를 놓친 경험도 있기도 하다. 또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일은 3 년 전에 흔들리는 어금니 하나를 빼라는 칫과 의사의 권고를 소홀히 하다 작년에 무려 어금니 세개를 뽑아야 했던 일은 평생 최대의 큰 실수를 넘어 분하기 조차하다. 1999년 초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일주일간 서부 지방을 둘러 보고 다음날 동부 New York 으로 떠나기로 예정 되었는데 L.A. 비벌리 힐스를 지나다 Vincent Van Gogh 전시회를 알리는 가로등에 걸린 배너를 보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 하고 그냥 동부로 떠났는데 뉴욕에 도착하여 그날 저녁 T.V.에 당시 클린턴 대통령도 L.A.에 고흐 전시회를 보러 갔다는 뉴스 방송을 듣는 순간 아차!  내가 잘못 생각 했구나 보고 올 걸 했는데 그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대개 작가의 작품이 세월이 흐르며 경매 과정을 통해 세계 각국의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가에게 분산 수집되기 때문에 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전시하는 기획전이 쉽지 않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L.A.전시회를 능가 할 대규모 고흐 전시회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나에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면 1994 년 고흐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된 암스텔담의 Van Gogh Museum 을 지척에 두고도 들리지 못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8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성시를 이룬 미술전시회 즉, "프랑스 미술 300 년전" " 근대 서양미술전" "인상파 전" 등에서 고흐의 작품을 보기도 하고 뉴욕의 구겜하임등 해외 미술관에 걸린 그의 그림을 몇 점씩 보았어도 두번 다시 없을 L.A. 전 같은 대규모 전시회를 눈 앞에서 놓친 것은 못내 아쉽다. 여러 나라에 고흐의 작품이 퍼져 있는데 아무래도 고흐의 탄생지 네델란드를 빼고는부유한 나라에 고흐의 그림이 많으며 따라서 미국에 가장 많이 소장되었고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 시대에 집중적으로 매입되어 일본에만 11점이 소장 되었고 유명한 15송이 해바리기 세점 중에 한 점도 가지고 있다. 아시아에는 일본을 제외하곤 중국이나 한국에 한 점도 없는걸 보면 고흐의 그림 소장 정도를 보아 그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비교해 본다는 것이 나의 지나친 비약일지... 

 

내가 고흐의 그림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받고 좋아하기 시작 한건 아마 고등학교 1학년 겨울 크리스마스 집에 들어온 어느 은행 달력을 펼쳤을 때 12 장 모두 고흐의 대표작(하긴 워낙 많은 걸작이 있어 어느걸 대표작이라고 해야 할지 곤란하지만....) 작품들을 본 경험이었다.

당시 교과서에 나타난 그의 그림은 작고 흑백이어서 별 인상을 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사람의 그림이 있구나 하는 정도 였는데 당시 수준으로도 제법 달력의 지질도 우수하고 인쇄 상태도 좋아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강렬한 색상과 힘찬 붓 텃치의 생생한 느낌에 압도 되어 숨을 죽이고 넘겨보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후 고흐에 관한 신문기사나 책, 영화, 화집을 꾸준히 보았는데 최근엔 고흐에 관한 책이 다양하게 출판되어 나를 즐겁게 한다. 작년엔 경북대 법대 학장이고 이번에 KBS PD의 해외 출장 중 가족동반 사실의 부당성을 지적하여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 박동규교수가 쓴 "빈센트는 내 친구" 를 퍽 재미있게 읽었고 "고흐의 영혼의 편지" 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수 많은 편지 일부를 번역한 책으로 고흐를 이해하는데 퍽 도움을 주었다. 작년 샌 프란시스코의 SFMOMA(샌 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들렸을 때 샀던 "What makes a Van Gogh a Van Gogh?" 라는 대표작이 곁들여진 고흐 작품의 해설서를 읽고 또 다시 고흐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근의 연구서나 고흐 애호가들의 의견을 보면 고흐가 천부적이라든가 정신 병력의 소유자라서 그의 그림이 특히 하고 뛰어난게 아니라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온 몸을 다 바쳐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하고 꾸준하게 새로운 실험을 하였으며 다양한 인문학적 독서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깊이 통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그림에는 따스한 인간애와 자연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고흐는 1853년 벨기에 국경 가까운 네델란드의 프로트 준데르트라는 작은 도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화상 점원 생활도 하고 목사 지망생이 되어 탄광촌에 들어가 일하는 등 여러가지 경험 한 후에 30세가 다 되어 화가의 길을 걸으며 소외 받고 가난에 허덕이는 노동자, 농민, 광부들의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초기의 대표작이며 수작으로 꼽힌다. 일생 동안 동생 태오의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받았으며 약 7년이란 짧은 화가 생활 동안 수 많은 걸작을 그렸으며 램브란트와 밀레를 존경하였고 특히 밀레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아 유사한 구도의 작품을 여럿 그리기도 하였다. 고흐가 밀레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당시 밀레 이전 화가들의 그림이란 아름다운 자연이나 유명인사나 귀부인을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밀레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시골의 이름 없는 농부의 기도하는 모습이라던가 가난한 농촌 여인들이 이삭을 줍는 모습을 그렸다. 즉 귀족이나 호화로운 파티나 인물들을 그려야만 그림으로 인정 받던 시대에 이런 그림들이 점점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인간애가 풍부한 고흐가 밀레에 경도되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아무튼 자기의 평생 후원자인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흐는 밀레의 그림과 같은 구도의 "첫 발자국" 이란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네, 마네 등 초기 인상파 화가들과 일본의 유키요에(浮細畵) 판화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간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밝고 생동감있는 화풍으로 바뀌어 고갱과 함께 대표적인 후기 인상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1888년 35세에 대도시 파리를 떠나 밝은 태양이 빛나는 남프랑스 아를에 정착하여 약 2년 동안 해바라기 연작 아를의 도개교를 비롯한 수 많은 걸작을 그렸으나 정신병으로 고갱과 다툰 후 자기 귀를 자르는등 건강에 이상이 생겨 파리 근교 오베르의 가세 박사를 찾아 갔으나 "까마귀가 나르는 밀밭"을 마지막으로 1890년 37세의 짧은 생을 권총 자살로 마감하였다. 사실 화가 7년 기간 중에서도 아를과 오베르에서 보낸 2년 반이 고흐에게 진정한 작품 기간이었고 또한 작품 내용도 충실하였는데 그의 작품 수를 보자면 거의 초인적 정열을 바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으로는 유화 약 870점, 소묘 1030점, 수채화 150점등 약 2000 점이 넘게 있으나 죽기 바로 직전에 겨우 한 점이 팔렸을 뿐 대부분 창고에 보관되거나 자기를 치료해준 가쉐 박사등에 그림을 주기도 하였다. 결국 고흐는 물감 살 돈 조차 없어 동생 테오에게 수 백통의  편지를 보내 자기의 입장을 알려 지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 수 많은 편지들이 남아 어느 화가보다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다른 화가에 비해 비교적 많은 작품이 네델란드에 남게 되는 역설적인 사실이 되었다. 올 11월 27일 외신에 의하면 불과 우리 돈으로 210만원 정도를 주고 벼룩시장에서 산 고흐의 모작이라고 알고 산 45센티미터에 30센티미터의 작은 유화 한 점이 감정 결과 진품으로 판정되어 앞으로 있을 경매에서 무려 40억원에서 72억원 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평생 가난에 허덕이던 고흐가 무덤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해바라기는 1887년 작품 4점과 1888년과 1889년에 그린 7점이 있는데 1887년 그림은 대체로 작품성이 떨어지고 1888년 이후 그린 3송이 한점, 5 송이 한 점, 12송이 두 점 그리고 15송이 3점이 있으며 "15송이 해바라기" 그림들이 비교적 작품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고흐는 자화상만해도 총 40점 중에 유화만 해도 25점이나 그렸는데 고갱과 다툰 후 그린 "귀를 자른 자화상"이 유명하다. 그의 시대별 장소별 작품 분류가 자료에 나와 있는데 초기 135점, 안트워프 시기 193점, 파리 시기 226점, 아를 시기 187점, 생 레미 시기 142점 마지막으로 오베르 에 머물면서 그린 77점이 있다. 특히 그가 죽음을 맞이한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6월 달에만 의사 가쉐 박사 초상화 2점을 포함하여 무려 한달 사이에 36점을 그렸고 자살한 7월에는 22점을 그려냈는데 이 때 그린 마지막" 까마귀가 나르는 밀밭" 을 비롯하여" 구름 하늘 아래의 밀밭, 수레국화 옆의 밀밭, 오베르 마을 배경의 밀밭" 등 밀밭 그림만 해도 6점을 그리면서 그의 마음과 육체 모두를 내 던져 생의 마지막 불 꽃처럼 화폭에 자신을 던져 죽음으로 내달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밤에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아이리스" "추수" "봄의 복숭아꽃이 핀 과수원"그림들을 좋아하지만 고흐의 어느 작품을 보아도 특색이 있어 굳이 어느 그림이 좋다고 말 할 수 없다.

 

이미 그는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듯이 1883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기도 하였다.

 

"And my aim in my life is to make pictures and drawings, as many and as well as I can, then, at the end of my life, I hope to pass away, looking back with love and tender regret, and thinking, oh, the pictures I might have made ! "

 

 

요즘에 고도원의 아침 편지에도 부쩍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흐의 편지에 나온 글귀들이 자주 인용되고 있어 반갑다.

 

 

 

 

벼룩시장 유화 '43억원 돈벼락'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그려진 유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진품으로 확인돼 300만유로에 팔렸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가옥이 있는 파리의 성곽'

올해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탄생 150주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고흐의 작품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많이 발생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벼룩시장 대박이다. 한 프랑스인이 지난 91년 파리 근교의 벼룩시장에서 유화 한점을 구입했는데 그 작품이 철저한 감정을 거친 끝에 진품으로 확인된 것. 12년 전 1,500유로(약 217만원)에 사들인 이 작품은 지난 7일(한국시간) 프랑스 남서부의 소도시 포르테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300만유로(약 43억원)에 팔렸다.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의 소유주는 모서리에 희미하게 적힌 빈센트라는 사인을 보고 작품을 샀다. 그러나 진품 판정에 대한 전문성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측은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승인 스탬프를 찍어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의 과학연구소는 방사성 탄소로 안료와 사인의 제작연도를 측정한 결과 적어도 100년 이상된 것임을 밝혀냈다. 고흐 전문가인 베누아 랑데도 이 작품이 1883년 네덜란드에서 고흐가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컬러와 광택제가 고흐의 다른 작품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진품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늘어나자 소유주는 자신감을 갖고 경매사에 작품을 넘겨 판매를 부탁했다. 날카로운 안목이 가져다준 노다지 사례였다.
 
올해 2월 일본 도쿄에서는 서양화가 나카가와 가즈마사의 수집품 경매를 앞두고 낙찰예상가가 바뀌는 소동이 일어났다. 작자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낙찰예상가가 1만엔(약 11만원)에 불과했던 유화작품이 고흐의 작품으로 판명되자 6,600만엔(약 7억2,600만원)짜리 명품으로 변모했다. 건설자재 회사 회장에게 넘어간 고흐의 유화는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중년 농촌여성의 옆 얼굴을 그린 소품이었다.
 
또 4월에는 영국 맨체스터의 피트워스 미술관에서 분실된 고흐의 '가옥이 있는 파리의 성곽'이 하루 만에 미술관 부근의 공중화장실에서 발견되는 괴사건도 있었다. 영국 경찰은 폴 고갱의 '타히티 풍경', 파블로 피카소의 '빈곤'과 함께 사라졌던 고흐의 그림이 돌아온 이유를 아직도 규명하지 못했다.
 
한편 지난달 뉴욕에서는 고흐의 수채화 소품이 경매를 통해 830만달러(약 996억원)에 팔리는 진기록이 수립됐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붓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