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상기

시립미술관 모네전을 보고....

깃또리 2007. 8. 2. 09:17

 

 

빛의 화가 모네 -서울시립미술관 을 다녀와서... 

2007.07.17

 

 올해는 유난히 서양미술전시회가 여기저기서 열려 눈을 한껏 황홀하게 한다. 올림픽 공원 MOMA미술관에서는 미국 Clevland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고흐에서 피카소까지'가 열리고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인상주의 작품으로 구성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오르세미술관전'이 손짓하였는데 모네 작품까지 더하고 연말에는 최대규모의 '고흐회고전'까지 계획한다니 서양미술 애호가들에게는 특별한 해가 될 것 같다. 문화예술의 수요공급은 아무래도 인간의 의식주가 걱정이 없이지고 한차원 높은 삶을 희구할 때 왕성해지는 속성으로 아시아에서도 쇄국을 가장 먼저 풀어 경제적 부를 이룩한 일본이 서양문화에 대한 소개와 도입에 앞장섰었다. 이런 사정으로 20여년 전만해도 유수한 음악공연이나 미술품전시회의 경우 일본에서 개최가 추진되면 그 기회에 우리나라에 공연과 전시가 주어지는 형편이다 보니 자연히 일본의 취향에 부지불식간에 추종하는 결과가 되었으며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음악, 미술의 기호가 특정화,편중되는 상황이었으나 최근 조금씩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왜 이런 장광설을 펴느냐 하면 본인도 물론 인상주의 화가 작품에 경도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일본인들의 열광적 인상주의 편애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올해의 경우에도 인상주의 작품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고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광적일 정도의 애호를 조금은 알 필요가 있는데 1800년대 초 유럽의 네덜란드가 일본과 교역을 활발히 하면서 일본판화가 다량 유입되어 유럽에 전해지고 당시 일단의 기성 화단에 새로운 기치을 내세우고 활동하던 화가들 후일 인상파로 불리우게 된 젊은 화가들의 눈에 일본그림과 판화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소재가 되었으며 인상주의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였다. 결국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일본사람의 눈에 형태 요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인상주의 그림에 녹아 있는 일본풍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고 덧붙여 서양 complex에 가뜩이나 시달리는 일본인들에게 국수주의적 우월감마져 주게 되었을거라는 생각은 나 만의 비약일 수 없다고 생각해 본다. 수 없는 예가 많지만 이번 전시회만해도 프랑스에서 국가적 인물로 분류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인 모네의 그림 중에서 일본풍 다리가 연못위에 걸려 있고 그 아래 일본 재래종으로 모네가 심은 수련이 전시괴고 있으며 모네는 수련 그림을 수십점이나 그려서 지금은 천문학적 가격에 거래되고 전시되고 있는 마당에 이를 기뻐하지 않을 일본인은 아마 없으리라.

 

 아무튼 나는 오늘 아침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늦은 아침을 마치고 여유롭게 공휴일의 한가로운 시내버스에 올라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하였다.

어제 내린비로 미술관 주변 나무들의 싱그럽게 신록을 자랑하고 하늘에 구름도 적당히 덮혀 걷기에도 마냥 좋은 날씨였으며 엄숙과 권위를 자랑하던 옛 대법원 건물은 고풍스런 외관을 유지하여 미술관의 품격을 높여주면서도 내부는 현대감각에 잘 조화하여 나는 들릴때마다 좋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옛 건물을 무참이 박살내어 흔적을 없애기보다 선유도 공원이나 시립미술관 같이 고치고 다듬어 훌륭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훨씬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는 년대별이 아닌 테마별 다섯개의 전시일로 나뉘어 이해를 돕는 설명문과 함께 구성되었다.

 첫번째 전시실은 (Water Lilies) ; Landscape on the Water (수련) ; 물 위의 풍경. 이 소제목은 모네가 궁핍할때부터 그를 후원하고 전시를 자청한 파리의 화상 뒤랑뤼엘이 1909년 3월 수련 첫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수련은 불어로 Nymphea's 냉페아이며 실은 모네가 키워서 그림을 그릴 목적은 아니었고 1883년 그동안 복잡다난 했던 신변을 정리하고 파리에서 센강 하류를 따라 80km정도 떨어진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연못을 조성하고 꽃이 작게 피는 일본 재래종 연꽃을 관상용으로 심었던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연못에 비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관찰하면서 많은 수련그림을 그렸다 한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모네도 일본그림과 판화에 경도되었고 연못위에 일본식 다리까지 놓으니 시간이 흐르며 연못수면과 연꽃에 쏟아지는 햇빛의 무궁무진한 변화에 모네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다. 전시실 그림은 1m x 1m , 1m x 1.5m , 2m x 2m 정도 크기의 그림들이었다. 오직 물과 연꽃뿐인 단순한 구성이며 대상의 윤곽도 분명치 않은 그림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연못의 물표면, 연잎, 그리고 꽃잎이 마치 실물이 눈앞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어 인상주의의 시스티나 성당벽화란 찬탄이 빈말이 아님을 느끼며 쉽게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하긴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십년을 캔버스와 물감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흐름을 따라 실험과 분석을 거듭하여 이룩한 성과물이니 시간적으로 이미 백년이 지나고 말과 생각이 다른 이방인들이 그림 앞에 서서 외경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기도하였다.

 

두번째 전시실은 Portraits of Family 가족의 초상. 풍경에 전념하였던 모네는 초상화는 손꼽을 정도로 적은데 모네의 첫 부인은 25세에 만났던 19세의 까미유 동시외인데 그녀의 모습이 유독 눈길을 끈다. 그림 기법이나 구도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그녀는 모네의 인상주의 그림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궁핍한 환경에서 허약한 몸으로 모네와 이곳저곳 전전하며 고생만하다 쟝과 미쉘이란 아들 둘을 낳고 32세의 젊은 나이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네와 관련된 인물들의 기록과 사진,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녀의 사진은 한 장도 없고 오직 이 그림 한 점뿐이라 한다. 아마도 두번째 부인 알리스가 비록 까미유 소생의 아들들을 친아들 이상으로 키웠다 해도 상당한 미인으로 자신보다 젊은 까미유의 사진과 그림을 남겨두기 꺼렸을 것이라는게 모네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 한다. 그래서 양산을 한 손에 들고 해변에 서 있는 이 까미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연민과 함께 바로 근처의 알리스의 노년모습과 비교를 이루다 보니 그녀는 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청춘으로 남아 하늘에서 조금은 위안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세번째 전시실은 Garden of Givermy ; 지베르니의 정원.

1883년 모네도 장년에 접어든 43세가 되던 해에 정착한 지베르니에서는 알리스와 여섯명의 자식과 모네와 두 아들 모두 열명이나 되는 대식구 였지만 넓은 저택에서 오순도순 잘 지냈다한다. 시간이 흐르며 모네에게 부와 명성도 찾아와 정치가 클래망소 총리와는 친구가 될 정도였다 한다. 의붓딸 불랑쉬와 수잔느는 화가로 모네에겐 친딸 이상으로 보필을 잘하여 그녀를 그린 초상화 한 점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어 떠돌이 부평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다갔지만 그의 기록과 그림이 풍성하게 남아 후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듯이 모네에게는 바로 블랑쉬와 수잔느 그리고 까미유 소생 아들 미쉘이 존재하여 모네의 사후에 그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힘들지 않는다 한다. 아무쪼록 화가도 최소한 자식복을 가지고 태어나야 그의 삶이 더욱 빛나는 듯 하다. 모네는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거친 붓칠로 수련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이 후일 미국추상표현미술을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고는 하나 나에겐 예술성이나 큰 감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네번째 전시실은 The Seine and The Sea 센강과 바다.

모네도 다른 어느 화가보다 물을 그리기 좋아하여 센강을 즐겨 그리고 보불전쟁이 발발하여 징집대상이 되자 이를 피해 영국 런던으로 가 있는 동안 안개 자욱히 낀 템즈강을 좋아하여 화폭에 담았으며 Big Ben으로 유명한 국회의사당이 희미하게 나타나는 유명한 그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대서양의 푸른파도와 풍광이 수려한 해안을 즐겨 화폭에 옮겼기 때문에 그를 '빛의 화가' '수련의 화가' 에 더하여 '물의 화가' 라는 별칭도 쓰이며 평생 빛의 흐름과 변화를 탐구했던 그에게 물도 역시 변화하는 대상이어서 그가 즐겨 소재로 삼았으리라 짐작이간다.

 

마지막 다섯번째 전시실은 Lights of Europe ; 유럽의 빛.

그가 거주지를 떠나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들을 모아 전시하는 방이었다. 영국의 런던, 이탈리아 베니스, 아들이 살았던 스웨덴의 이국 풍경을 인상주의 기법으로 담아냈다. 사실 모네라면 '인상주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초기 작품으로 인상주의란 어휘가 태동하게 된 작품인 Impression, sunrise (인상, 해돋이) 때문인데 이 작품은 프랑스 국가의 국보급에 해당하여 파리 마르모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나 해외반출이 금지되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적이 있다. 사실 미술이나 음악 문학 등 예술세계에서 어느 유파가 갑자기 출현하는 것은 아니고 배경과 전조가 꿈틀거리다 어느 시기에 구체적 모습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모네 역시 영국 런던에서 터너의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 받았다고 하니 달리 말하면 터너의 파도란 그림을 인상주의 그림이라고 말한들 전적으로 반박하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혼자 해보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같은 그림을 두세번씩 보면서 한나절을 전시실과 카페 오자르에서 보냈다.

'순간을 영원으로' 바꿨다는 모네를 통해 우리의 희열에 찬 삶은 가끔씩은 영원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년말의 '고흐회고전'을 기대해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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