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깃또리 2004. 5. 26. 21:25

독일인의 사랑 Deutsch Leibe

F. 막스 뮐러 지음

오영훈 옮김/ 이범석 그림

북 스토리

2004. 5.

 

 

 꼭 6 년전, 1998년 이맘 때인 5월 어느날 나는 새로운 회사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단군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미증유의 재앙인 IMF 통제의 실시로 우리 사회 곳곳에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우고 모두의 가슴은 불안과 불확실로 가득하여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보다 몇 살 위인 직장 선배의 책상에 작은 책 "독일인의 사랑"이 한동안 놓여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다 큰 자식 누군가가 어버이날에 아버지에게 책 선물을 했던지 아니면 각박한 세상 살이에서 젊은시절 감동을 받았던 책을 다시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 그 당시 책 제목은 알고 있었고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마침 새로 시작한 공부에 정신이 없는 형편이어서 공부가 끝나면 읽어야지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4년의 시간도 흘러가고 다시 2년이 지난 며칠전 일요일 도서관 서가를 살펴보다 "독일인의 사랑"이 눈에 띄어 주저없이 반갑게 꺼내들었고 김훈의 "칼의 노래 1.2" 그리고 "현의 노래" 이렇게 4 권을 집으로 들고 와 제일 먼저 "독일인의 사랑"을 읽었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저자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F. Max Muller (1823~1900)는 독일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며 그리스인 뮐러라고도 하는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었다.

빌헬름 뮐러는 작곡가 슈베르트가 곡을 써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연가곡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Die Schnemllerin 와 겨울나그네 Die Winterreise 의 가사가 된 연작시를 쓴 사람이다.

 슈베르트가 31세라는 짧은나이로 요절하였고 시인 뮐러도 동시대 사람으로 슈베르트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슈베르트와 같이 미처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대강 년대를 짚어 보니 아들 막스 뮐러가 출생하고 3년이 지나고 아버지인 빌헬름 뮐러가 세상을 떠난 것 같다.

 아들인 막스 뮐러는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파리와 런던에 유학하여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연구하여 이 방면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거두었고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내기도 하였다 한다. 연구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하고 인도.유럽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비교신화학등의 과학적 방법론 확립에 큰 기여를 하며 많은 저술활동을 펼친 학자이다. 예외적으로 "독일인의 사랑" 이 소설을 딱 하나 썼는데 일반인에게는 그의 혁혁한 학문활동보다 단 한편의 문학작품으로 그의 이름을 드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어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문학작품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알게 된다.

 

 소설 내용은 ""로 시작하는 1인칭 소설인데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는 동안 자기 주변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시작으로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관계 그리고 이성에 눈을 뜨는 과정을 첫번째 회상을 시작으로 일곱번째 회상을 거쳐 마지막 회상까지 총 여덦개의 회상으로 짜여진 회상형식의 소설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주인공이 과거 사실을 적은 일기장을 읽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너무나 사실적이고 심리묘사가 치밀하여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아 이게 소설이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번째 회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신비와 비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신비와 비밀을 과연 누가 말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모두 이 어린 시절이라는 경이로운 정글을 지나왔고, 그 행복의 환상 속에서 눈을 떠 본적이 있다. 그때 인생이라는 신비로운 현실이 파도와 같이 밀려와 우리의 영혼을 휩쓸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으며, 온 세상은 우리의 것이었고 우리는 곧 전 세계의 것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고 휴식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생명이었다. 우리의 마음속은 봄 하늘처럼 맑고 오랑캐꽃 향기처럼 신선했고, 주일날 아침처럼 고요하고 위대하였다."

 두번째 회상에서는 어린 꼬마인 주인공이 아버지를 따라 후작 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서양식 예절인 부인이 내민 손에 키스를 하는 대신 어머니에게 하듯이 목을 끌어 안고 키스를 하여 집에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여기서 주인공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남에게는 다르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비로소 남이라는게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어린아이가 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그 어린 아이는 어린아이가 아닌셈이다.

 세번째 회상에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후작의 딸이며 백작의 지위를 승계하였으나 선천적으로 물려 받은 심장질환으로 항상 누워지내는 아름다운 소녀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는 자기의 죽음을 항상 가깝게 느끼며 다섯 손가락에 낀 미리 준비한 반지를 차례차례 빼 동생들에게 주고 키스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희들과 헤어지더라도 나를 기억하면서 이 반지를 끼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기가 남이기 때문에 반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마리아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낸다. 마리아는 한동안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고 있다가 주인공의 눈을 응시하며 마지막 새끼 손가락에 낀 반지를 주인공에게 전한다.

 반지에는 한줄의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신의 뜻대로"였으며 마리아는 주인공에게도 똑같이 키스를한다. 그러자 주인공 소년은 마리아가 마치 천사와 같다고 생각하며 자기를 타인이란 울타리 밖의 사람으로 보지 않음에 감격하며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반지를 나에게 주고 싶거든 차라리 네가 가지고 있어 네것은 모든게 다 내 것이니까."

 네번째 회상, 다섯번째 회상 모두 어느 부분도 소홀할 수 없는 감동적인 내용인데 이제 독자들을 위해 이쯤으로 해두는게 좋을듯하다.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의사, 그리고 주인공의 순수하고 맑은 사랑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도록 하는게 옳은 일일테니까.(결과를 다 알고 보는 영화는 그 만큼 재미가 덜한 법이다.) 예전에 읽었던 사람은 다시 읽기를 그리고 마음 먹고 시작하면 한 두시간이면 충분한 분량이니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이 부분만은 마지막으로 적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회상에서 주인공은 의사와 헤어지는데 의사는 주인공에게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신의 뜻대로,"

 

 "수백만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단 하나 나의 천사인 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하여 나의 회상은 이 한없이 영원하고, 불가사의한 사랑의 수수께끼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되고 만다."

어느 민족보다 관념적이고 철학적 사색을 즐기는 독일인의 정신이 빛을 발하는 한편의 소설이다. 물질에 압도 되어 사랑도 돈으로 환산되는 세태에 두고두고 음미해 불 아름다운 이야기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