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知의 정원>을 읽고...

깃또리 2019. 7. 19. 12:48

<知의 정원>을 읽고...

다치바나 다카시, 立花 隆/사토 마사하루, 佐藤 優 지음

박연정옮김

예문

2013. 12. 18.

이미지없음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立花 隆)라는 저술가와 사토 마사하루(佐藤 優)라는 논객이 독서, 교양에 관련된 서적에 대하여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다치바나씨는 1940년 나가사키현에서 출생하여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文藝春秋>기자로 일하다 지적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다시 도쿄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평론을 발표한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1979년 <일본공산당연구>로 고단샤(講談社) 논픽션 상을 수상하였고 사회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우주, 뇌, 과학 등 폭 넓은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어 '일본 최고의 제너럴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나는 수년 전 이 사람이 지은 <뇌를 단련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다른 책도 읽은 적이 있다. 책 본문에 보면 지금부터 10년 전에 이미 소장했던 도서가 무려 3만5천 권쯤 되었다니 물론 그 많은 책을 다 읽지는 않았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장서가이자 독서가이다. 함께 대담한 사토씨는 1960년 도쿄태생으로 도지샤(同志社)대학 및 대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주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정, 재, 학계 등 여러 분야의 인사들과 폭 넓은 교류를 하며 러시아 통으로 활동하다 북방4개 도서 반환을 위하여 러시아와 평화협정에 관련하였다. 그러나 정치인의 파워게임과 극우세력의 견제로 2002년 공무원신분에서 범죄자로 몰려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형을 마친 다음 자신의 혐의와 관련한 정치적 배경과 부패한 검찰, 언론의 선정성을 폭로한 <국가의 덫>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낸 가장 논쟁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논객이라 한다.

 

지식, 교양, 독서라는 주제가 워낙 폭 넓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지의 정원>이기 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 5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소제목을 우선 밝혀 대강의 책 내용을 소개해 본다.

 

제1장 독서가 인류의 뇌를 진화시켰다.

제2장 지의 전체상을 파악하다.

제3장 20세기는 과연 무엇이었나.

제4장 가짜에 속지 않는 법

제5장 진정한 교양은 해독제가 된다.

부록1. 다치바나 다카시의 선택-섹스의 신비를 탐구하는 책 10권

부록2. 다치바나 다카시의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독서기술 14개조

 

대담 내용은 <도쿄대학 교수가 신입생에게 권하는 책>, <교양을 위한 북가이드>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책장에서 100권을 꺼내다. 사토 마사하루의 서재 책장에서 100권을 꺼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문고와 신서에서 각각 100권을 골라 총 400권의 책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 책들과 관련한 대담을 풀어가고 있다. 400권의 책들은 그 동안 알려졌던 동서양의 교양을 위한 고전은 비교적 제외하였고 일본의 근현대 정치와 경제에 관련한 책이 다수 포함되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 두 사람이 선정한 책들을 허술하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왜냐면 우리 입장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인접한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몇 개 분야가 일본을 추월하자 마치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은 것처럼 의기양양하였지만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무지의 소치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현 상황을 비교해 보면, 우선 경제 규모의 단순 비교에서 GDP는 일본 약6조 달러(세계3위), 한국 1조1300억 달러(세계15위)이며 1인당 GDP 일본 46,000 달러(12위), 한국 22,500달러(34위), 인구 일본 1억 2700만 명(10위), 한국4,900만 명(25위)이다. 하긴 1964년 기준은 1인당 GDP가 일본 725달러(24위), 한국 77달러(69위)로 거의 1/10 수준에서 그간 50년이 지나 1/2수준으로 격차를 좁힌 것은 대단한 일이긴 하다. 지금 국가부도를 겨우 벗어나 아직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등이 당시 500달러가 넘는 부자나라였다는 사실은 어느 나라라도 정치지도자나 국민들이 조금 방심하면 그 운명이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제가 한 참 벗어났는데, 지금도 일본을 무시 할 국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다 길어졌다. 이 책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을 간추려 본다.

 

다카시의 100권 중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99번째로 들어있다. 소개 글은 "기독교 문화 중심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이야기이다. (중략) 서구인에게 유럽인 이야기를 유럽인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일본인의 지적능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영어 번역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이 책 15권을 모두 흥미 있게 읽은바가 있는 내가 평가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긴 하다. 스물일곱 살 때인가 젊은 나이 여자 몸으로 혈혈단신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역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로마역사를 공부하고 역사현장을 일일이 답사하여 30년 가까이 황금 같은 청춘을 불살라 15권의 대작을 완성한 저자에 대하여 인간적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노력을 침소봉대하여 '일본인의 지적능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의 영어 번역이 필요하다"라는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결국 이는 일본인 스스로 서양인에 갖는 왜소 컴플랙스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한다.

 

또한 '로마인 이야기"에 대하여 과연 '유럽인 이야기를 유럽인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다."라는 표현이 정말로 합당하는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이 글처럼 일본인들이 서양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면 작금 불거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과 관련한 역사인식 부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사실들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독일의 경우는 자신들의 과거 히틀러 정권의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고 참회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서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못 궁금하다.

 

<동방견문록>에서 마르코 폴로가 "지팡구(일본)는 황금의 나라이다."라고 하면서도 일본에 오지 않은 것은 '일본인은 식인종이다.'라고 썼다고 하며 일본 번역본은 이 부분을 일부러 삭제했으며 서구인의 일본에 대한 편견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은 필독서라고 소개하였다. 하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핸드릭 하멜이 쓴 <표류기>에도 원문에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얼토 당치도 않은 내용이 들어 있어 과련 하멜이 조선에 체류한 것이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 한다. 하멜이 동남아 여러 나라를 들렸다 조선에 표착하였고 세월이 한 참 흐른 뒤에 네덜란드에 귀국하여 보고서를 쓰다 보니 기억이 흐릿하고 혼동하여 실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자신의 고생을 부각시키려고 그랬는지 퍽 궁금하다. 사실 그가 글을 쓴 목적은 자신을 고용한 무역회사를 상대로 그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 당시 정황으로 보면 하멜의 기록을 어느 누가 찬찬히 확인하고 시비를 걸 사람도 없는 것을 하멜이 먼저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황과 도쿄대-대일본제국의 생과 죽음>이라는 책에 관련한 부분에서 다카시씨의 부친과 도쿄대 총장이 모두 무교회파 기독교도였다 하며 그래서 다카시씨도 도쿄대에 입학하여 무교회파 학생기숙사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 함석헌씨 등이 무교회파 기독교도였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무교회파가 독자적인 대학교의 기숙사까지 운영한 걸 보면 일본은 무교회파 기독교 세력이 우리나라에 비교하여 전통이 오래 되고 퍽 강했던 것 같다. 또한 당시 일본은 전통적으로 어학을 중시하여 다카시씨는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프랑스어는 ‘아테네 프랑세’라는 교육기관에서 그리고 철학과 시절에는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강독하고 플라톤은 그리스어로 강독하였으며 페르시아어와 아라비아어도 공부하고 중국의 철학수업을 위해선 <장자>를 공부했다고 하니 한문 실력도 대단했던 것 같다.

 

근, 현대에 관련한 책은 너무 많아서 나열도 쉽지 않다. 칼 포퍼가 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항상 추천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꼭 읽어야 할 책 같다. 서양에서 교양학을 'Arts and Science'라 하는데 그리스어 테크네(아트)와 에피스테메(사이언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라 하며 외국어습득은 테크네라는 말도 보인다. 덧붙여 서양에서 교양은 ‘Liberal Arts’라 부르는데 다시 말하면 자유스러운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왜 사이비과학에 홀리는가.'라는 소제목의 글은 내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부분을 시원하게 대변한 대목이다. 일본에는 정기적으로 혈액형 성격테스트에 관한 책이 출판되고 어김없이 잘 팔린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뿐이고 유럽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혈액형과 성격을 결부시키면 나치즘으로 간주되고 사이비,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한다. 혈액형, 심리학책들이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어떤 이론이 누구에게나 적용해도 어느 정도 들어맞도록 꾸몄기 때문이라 하였다. 한마디로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은 "없다"가 정답이라 하였다. 나 역시 백번 동감한다. 내 주변에 대학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교양과 지식을 갖춘 사람조차 혈액형과 성격을 결부시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좋은 책을 읽어 사이비과학에 내성을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터넷 시대에 독서는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에 교양의 정의가 나온다. '인간 활동 전반을 포함한 이 세계의 전체상에 대한 폭 넓은 지식' 또는 '개인의 정신적 자기 형성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이념의 총체'라고 간단히 기술하였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실학은 '빵을 위한 학문' 교양은 '모르면 부끄러운 지식의 총체'라 하며 '각계의 교양인이라 간주되는 사람들과 당당하게 지속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지적 능력'이 교향이라고 다카시씨는 요약하였다. 사토씨는 교양 역시 생활에 도움을 주는데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나 기독교 사상이 무서운 독약인데 그 독약에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교양이라 하였다. 한 사람은 신학대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무교회파이지만 기독교도인 이 두 사람이 ‘기독교 사상을 독약’이라고 할 정도이다.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 지식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사고체계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갈수록 금전만능 사상이 확산되어 교양과 지식보다는 "돈"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심지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지식은 가치가 없다. 즉, 입학시험, 취직시험, 진급시험, 자격시험에 필요한 지식만 필요하다.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내 주변에도 실생활에 도움이 없고 돈이 되지 않으며 골치 아픈 지식을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것 자체를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 나는 가치관의 차이로 관대하게 치부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앎'이 얼마나 '삶'에서 기쁨을 주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큰가를 모르는 사람을 보면 다소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독서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독서는 다른 사람의 머리로 사고하는 것이므로 바보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하니 교양을 위한 독서를 하면서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끝으로 '부록2'에 실린 다치바나씨의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독서기술 14개조'를 요약해보았다. 괄호 안은 내 생각이다.

 

1.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마라.(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 제일 싼 것이 책값이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하여 한 권으로 만족하지 말고 비슷한 책을 몇 권 더 보라.(맞는 말이지만 세상에는 너무 많은 테마가 있고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걱정이다.)

3.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 마라.(맞는 말이다. 이런저런 책을 가리지 말고 볼 필요가 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무리하게 읽지 마라.(아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은 책도 도전적으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5. 일단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라.(나도 그러는 편이지만, 사실은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책을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6. 속독술을 익혀라(필요하다.)

7. 책을 읽으면서 노트하지 말고 한 번 더 읽는 것이 경제적이다.(두 번 읽는 일도 쉽지 않다, 처음 읽을 때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였다가 후기를 남기는 방법도 좋다.)

8.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를 무조건 믿지 마라(맞는 말이다. 취향이 다르고 관심분야가 다르니 조심해야 한다.)

9. 책을 읽을 때 항상 의구심을 가져라.(동감이다.)

10. 놀라움을 느끼는 부분(좋은 뜻이건 나쁜 뜻이건)을 만나면 반드시 저자가 이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까 또는 저자의 이런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봐라 그것이 적당히 표현된 경우는 엉터리일 확률이 높다.(같은 생각이다.)

11. 무엇인가에 의혹을 품게 되면 항상 오리지널 데이터, 생생한 팩트와 직면할 때까지 그 의혹을 진전시켜라

12. 주석을 읽지 않고 그냥 넘기지 마라.(지당한 말이다.)

13. 번역서 중에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극히 많다. 번역서 선정에 유의하라.(번역자가 누구인지 잘 살펴보는 것이 방법 중 하나이며 우리말이 어색하면 잘못 된 번역서이다.)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획득하고 축적해가는 지식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당연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