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대화"를 읽고...

깃또리 2004. 11. 24. 00:03

"대화"를 읽고...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대담집

샘터

 

2004. 11. 17.

 

 

 토요일 친구 사무실에 들러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책 한권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동안 간행되고 있는 월간지 "샘터" 지령 400호 를 기념으로 1부는 피천득씨와 김재순씨, 2부는 법정스님과 작가 최인호씨가 대담한 내용을 담은 "대화"란 제목의 책이었다.

 

 잘 아는바와 같이 피천득씨는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수필 "인연"을 쓴 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고 이제 연세가 90을 넘었으며 김재순씨는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이지만 샘터를 창간하여 지금은 고문자리에 있는 분이다.

 법정스님은 이제 70을 넘긴 글 잘 쓰시는 스님이고 최인호씨는 "별들의 고향"을 시작으로 300만부가 팔렸다는 "상도"를 비롯하여 "길 없는 길" 등을 그리고 샘터에 20년 넘게 연재하는 가족소설 "가족"을 집필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 중에 한 사람으로 60대이다.

그러고 보니 90대, 80대, 70대, 60대의 나이에 직간접으로 샘터사와 관련이 있는 네 사람의 대담인 셈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제 1부는 소제목으로 "아름다운 인연, 잊을 수 없는 인연" 으로 처음에 도산과 춘원인데 피천득씨는 춘원 이광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사람으로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의 "수선화"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춘원을 통하여 알았다 한다.

 그러나 문학적인 스승이자 존경하는 춘원이 말년에 변절하여 이름을 오욕되게 하여 애석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피천득씨의 호 "금아 琴兒" 는 춘원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재순씨는 명성과 걸맞는 게 있다면 금강산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하며 도산 선생의 가르침은 한시도 잊을 수가 없으며 도산 선생은 외모도 비범하였으며 목소리도 우렁차며 영웅의 기상을 가졌으나 마음씨는 따뜻하여 도산 선생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도산이 자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자주 가는 집 근처 공원이 도산공원이며 여기에 도산 선생의 묘소가 있고 샌 프란시스코에 갔더니 그 곳이 바로 도산 선생이 처음 미국에 발을 딛고 지낸 도시라고 하여 감회가 깊었는데 시간이 나면 서가에 있는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는 "도산 안창호"를 다시 읽어 보려고 한다.

 

신앙과 음악에 대하여...

 피천득선생은 평생 동안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즐겨 들었는데 이런 음악을 듣노라면 신의 존재를 느끼며 신이 인간에 내린 최고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나도 며칠 전 승용차 안에서 좋아하는 모짜르트의 교향곡과 하이든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음악을 일찍부터 알고 들었다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하나의 행복이라 생각하였다.

 김재순씨는 "종교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같은 역할이고 정치. 경제는 엑셀레이터 같다"라고 말했는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죽음도 배워야 한다.-나이듦에 대하여...

 유머는 인생을 향상시키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유머는 위트처럼 날카롭지 않고 풍자처럼 잔인하지 않아 따스한 웃음을 짓게 한다. 정다운 식탁에는 현명한 사람보다 재미있는 사람을 잠자리에서는 훌륭한 여인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토론할 때는 다소 정직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였다.

 로마의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그것은 곧 죽음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하였다고 하며 이말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최근 어느날 출근하다가 문득 바라본 아파트 담장가에 서 있는 아름답게 물든 단풍나무들을 보고 마치 이 나무들이 올해 처음으로 단풍이 들었던 것 같은 느낌을 가진적이 있다.

 매년 이 맘 때에 항상 그렇게 나무들이 거기에 서 단풍든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 연륜을 더하다 보니 자연의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모양이다. 이게 다 연륜을 더한 덕택이 아닌가 한다.-나이 듦의 고마움.

 

  피천득씨가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된 사실인데 지금도 처녀시절의 앳된 그녀의 사진을 책상 위에 놓고 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스님이 부탁하여 사진을 복사하여 주려고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퍽 재미 있는 내용이며 한 여성을 평생 좋아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한 열성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하였다.

 

제2부는 법정스님과 최인호씨의 대담내용으로 소제목은 "산다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였다.

법정스님이 감기가 들어 새벽에 기침으로 일어나게 되자 촛불을 켜고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참선을 하는데 바로 감기 덕분이 아니냐고 했다.

 즉, 귀찮은 감기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늘 있으며 내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랑에 대하여-

 피천득씨가 20대 시절 만주에서 사랑했던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같이 탈출하자고 애원해도 병원의 환자를 위해 떠날 수 없었다는 그 처녀의 마음씨는 천사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사랑도 대인관계도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소유를 하고 싶다는 말인데 이 소유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로운 사랑이 이루어지고 대등한 사랑이 성립된 다는 말일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디즈레일리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즈레일리는 자기 보다 나이도 위이고 학식도 부족하고 못 생긴 아내와 살았는데, 출세하여 영국의 수상이 된 후에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으면 자기의 무명 시절에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준 여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말로 조강지처를 생각한 인물이었던 같다.-디즈레일리에 대해서는 언젠가 "앵초 이야기"에서 적어 놓은 일이 있다.

 

가족에 대해서-

가정은 "올 코트 프레싱의 격전장 " 자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아무렇게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게 그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속 상해도 막말은 하지 마라란 말이 나온다 지당한 말인데 막상 가정생활에서 지켜지지 않는 일인데, 앞으로라도 마음에 새겨 두고 실천할 일이다.

네 사람 모두 글을 쓰는 사람들이고 많은 독서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사소한 인생사에서부터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박식함에 부러울 뿐이며 이런 책은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 둘 책이 아니라 틈이 나면 다시 꺼내 읽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을 만 한 책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