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기

"아름다움을 훔치다" 를 읽고...

깃또리 2005. 12. 11. 11:42

<아름다움을 훔치다.> 를 읽고...

김수남 지음

디새집



 요즘 국내에서 출판되는 단행본들의 표지 디자인이 갈수록 세련되고 종이도 예전과 달리 가벼워 책을 들고 한참을 신기하듯 바라보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 책도 표지 제호가 살짝 들어간 음각으로 보기에 좋았다. 더구나 20 년 가까이 영어의 생활에서 풀려나 지금은 성공회 교수로 <감옥으로부터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의 저자이기도 한 신영복씨의 글씨여서 보기 좋았다.


 저자 김수남은 1949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 기자 생활을 잠깐하다 자유사진가로 활동하여 한국의 굿을 30년 넘게 사진에 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아시아 오지에 눈을 돌려 다양한 민속 자료를 남기고 있으며 일본 히가시가와(東川) 사진상 에서 해외작가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다.


 책 뒤의 "눈물의 렌즈로 영혼의 아름다움을 훔치다." 라는 작가의 말을 읽어 보면 처음 사진을 찍게 된 동기는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뜻함" 이었다고 한다.

 

 김수남은 여기서 우리문화의 기초 투자와 저변 확대를 위해 바다 장어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 이 놈도 연어처럼 민물에서 산란하여 바다에서 크고 다시 제가 태어난 강으로 회기하는 종입니다. 다 자란 놈이 값이 나갈 것 같은데 오히려 투명한 댓이파리처럼 작은 치어들이 훨씬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이 치어를 사다가 일본의 강가에 풀어놓기 때문이라나요. 장어라는 놈은 바다로 돌아가도 언젠가는 산란을 할 때가 되면 자신이 자랐던 강가를 기억합니다. 그러니 그 치어들이 자라면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의 강으로 찾아가겠지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문화와 예술도 이와 같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그 속성상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떠났던 치어가 다시 돌아와 산란을 하듯이 문화에도 기초 투자와 저변 확대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발문은 현재 <한국 굿학회> 회장이며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였으며 박물관장을 지낸 김인회씨가 �는데 김수남과는 1981년 즉 23년전에 만났는데 김수남의 사진 작가로써 프로페셔널 정신과 남다른 감수성과 정서적 특징들을 나열하며 덧붙여 예술 감각과 재능, 무속과 민속 예술분야의 전문가적인 식견과 이해, 기자로서의 감각, 판단력, 기회 포착등의 강점을 칭찬하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인간적 마력의 정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김수남은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눈을 지닌 큰무당이다. 단지 방울과 부채 대신 사진기를 들고, 공수를 내리는 대신에 셔터를 눌러 자기가 본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보통 무당과 다를 뿐이다."


 책의 본문은 11명의 우리나라 전통 예인들의 연보를 시작으로 각자 전문 보유 기예의 소개와 김수남과의 인간 관계들을 흑백 사진과 함께 싣고 있다.


1. 제주 큰 심방 안사인 (1928~1990 제주읍,용담리)

 

 '그 몸을 통과하는 제주의 신들 '

 

53 살에 중요무형문화제 제 71호 제주 칠머리굿당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49세에 심방의 최고위인 상신방이 되었는데 제주에서는 무당을 신의 성방이라하여 심방이라 한다.

 그를 소개하는 글은 이렇다.

 " 안사인은 심방이 천시되고 굿이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던 환경에서 스스로 심방임을 자부하며 굿을 지키고 알린 재주의 대표적 심방이었다."

 

 


2. 1인 창무극의 공옥진(1931~ 전남, 승주군 송광리)

 

 '인간의 껍질을 벗겨버리는 통증 '

 

 어려서 판소리를 배웠고 건축가 김수근이 마련한 공간사랑에서 1인 창무극 공연을 시작으로 일반인에게 "병신춤"으로 알려지기도 한 독창적인 창극으로 "한국의 전통적 소리에 춤과 재담, 몸짓을 가미한 창무극의 창시자인 공옥진의 춤은 민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병신춤은 지체부자유자들의 반감으로 최근 그 공연이 활발하지 않다.


 

3.한말 최후의 광대 이동안(1906~1995 경기, 화성)

 

''집시의 피 '

 

 줄광대, 잽이, 춤군등의 다양한 기예 보유자이며 특히

78세에 '발탈'로 중요 무형문화재의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그를 소개하는 글에는 이런 말이 덧붙여졌다. "춘하추동 백구두를 신고 철따라 모자를 썼던 멋쟁이 이동안은 남사당패와 재인청에 내려오는 수많은 전통무영과 기예를 두루 익힌 한말의 마지막 광대였다."


 

4.서해안의 배연신굿의 김금화(1931~ 황해도, 연백)

 

 '가슴 속의 화로 '

 

 17세에 만신(무당)이 된 강신무로서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지노귀굿등 모든 굿엣 뛰어난 기량을 보유하였으며, 독일 베르린에서 윤이상선생을 위한 진혼굿을 열기도 했다.

56세에 배연신굿대동굿으로 중요유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김금화 제자이며 후계자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신딸 채희아는 경기여고 졸업한 재원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종족무용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나라의 춤을 배우던 중 몸에 신기가 생겨 귀국해서 내림굿을 하게 되었는데, 그 범상치 않은..."

 김금화를 소개하는 글로 "서해안 비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일인자였던 김금화는 국제적으로도 명망이 높으며 국내외의 나라굿을 주도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큰 만신이다."


 

 

5.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던 소리꾼 김소희(1917~1995 전북,고창)

 

 '조용한 통곡,'

 

 금세기 최고의 명창으로 불리워지나 신산한 그의 삶을 생각하면 결코 그녀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8세에 판소리 <춘향가>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 5호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그녀의 뛰어난 재주와 함께 천부적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 김소희는 천부적인 목을 갖고 태어났다고들 한다. 판소리는 원래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나오는 소리인 수리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 수리성만으로는 너무 탁하여 건강하고 딱딱한 소리인 철성을 겸한 소리인 천구성을 가장 이상적이고 천성적인 명창의 성음이라고 높게 친다.

 이 천구성 안에 슬픔을 억눌러 내면적인 한을 나타내거나 슬픔과 한을 폭발시켜 통곡을 나타내는 소리를 애원성 또는 서름제라고 한다. 애원성은 아름답고 맑고 높은 소리며 슬픔이 처절하고 고독과 한이 얽힐때 사용하는 효과적인 창법이다. 김소희의 목이 이런 최상의 소리를 낸다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김소희의 소개글로 "문과 예를 겸비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김소희는 서편재와 동편재를 넘나들며 새로운 판소리의 경지를 일군 최고의 여창이었다."


 

 

6.도살풀이의 명무 김숙자(1927~1991 65. 경기 안성)

 

' 토굴 속의 빛 '

 

64세에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 도당굿 도살풀이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토굴 속에서도 춤에의 열망을 키웠던 김숙자는 '신기 서린 도살풀이의 명무'로 칭송받으면서도 언제나 청빈한 삶으로 순수한 예술가의 정신을 곧추세웠다."

 

 

 

7.범패와 영산재의 박송암(1911~2000 90. 서울 마포)

 

 '극락을 향하는 소리 '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63세에 중요 무형문화재 50호로 영상재가 지정되어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일반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범패(梵貝)란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가곡 ,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성악의 하나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를 통해 신라시대 때 들어왔으며 지금은 상주권공재,사왕각배재, 생전 예수재, 수륙재. 영상재 등 다섯가지의 재를 올리고 있다."

 

 그를 소개하는 글은 이러하다. "구한말 개화파 박영호의 손자였던 박송암 스님은 깊은 계곡에서 들려 오는 범종소리 같은 청아하면서도 심오한 범패소리를 하던 최고의 범패승이었다."


 

 

8.동해안 굿의 신석남(1930~1992 63. 강원 삼척)

 

 '영혼을 부르는 하늬바람. '

 

 세습무로써 강릉 삼척을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의 굿을 집대성하였고 특히 강릉 단오재에서 벌이는 별신굿은 가장 큰 규모의 굿이자 우리나라 제일의 마을 축제이다.

60세에 강릉단오재 별신굿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9. 승무의 한영숙(1920~1989 70. 충남 천안)

 

' 허공을 사르는 곡선 '

 

 48세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승무가 지정되며 예능 보유자가 되었으며, 62세에는 학춤으로 역시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그외에도 살풀이를 L.A. 올림픽 문화축전과 88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하기도 하였다.

 혼을 중시하는 할아버지 한성준으로 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열세살에 들었던 "춤은 몸으로 추는 것이 아니라 넋으로 추는 것이다. 그것은 뼈 마디 마디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라는 말을 평생 잊지 않았다한다.

 "조지훈시 <승무>의 모티브가 되었던 춤꾼이라 회자되는 한영숙은 승무와 살풀이 학춤, 등 우리나라 전통무용의 맥을 잇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 춤꾼이었다."


 

10. 가야금 산조의 명인 성금연(1923~1986 64 전남 담양)

 

 '진주처럼 모아놓은 눈물 '

 

 46세에 중요 무형문화재 23호로 가야금 산조가 지정되며 뛰어난 명창으로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1972년 미국 아시아학회 초청으로 미주 순회공연을 하고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면서 절정에 올랐었다. 남편 지영희가 세상을 떠나자 망부가격인 <눈물이 진주라면>을 직접 작곡하였으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인간 문화재 자격을 반납하였고 1986년 귀국독주회를 마지막으로 열고 타계하였다.

 

  그녀를 소개하는 글로 "망부가 <눈물이 진주라면>으로 더 유명한 가야금 산조의 명인 성금연은 왕성한 실험정신과 창작욕을 불태우며 독창적인 음악체계를 창조한 민속악의 대가였다."


 

11.밀양 양반춤의 하보경(1906~1997 92. 경남 밀양)

 

 양반춤, 북춤, 오북춤등을 복원 집대성하고

 75세에 밀양 백중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68호로 지정되며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밀양 양반춤의 대가였던 하보경은 집안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씨름판, 윷판, 소싸움판, 장기판, 투전판 등의 놀이판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며 아름다운 백발을 휘날렸다."


 사실 굿이라면 5.16 이전까지만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던 민간무속공연이었다. 사실 그 폐단이 자못 크기는 하였지만 굿이란게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나타내고 정신적 심리적 치유기능도 없지 않았으므로 이를 강경 일변도로 미신이라 몰아 말살한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고 본다. 다행히 김수남과 같은 눈밝고 우리 것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어 기록으로 남겨지고 일반인도 쉽게 읽고 알 수 있는 책으로 펴내어 여간 고맙기 그지 없다.


 끝으로 이 책을 펴낸 파주에 있는 출판사 "디새집" 은 기와집을 말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