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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베르 까뮈..

깃또리 2005. 9. 8. 00:59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세계로 인도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닫혀 버리면 그만인 門 이다.. - A.CAMUS-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고 스페인계 어머니는 귀와 입이 부자유스러운 문맹(文盲)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버지가 마른 전투에서 전사하자,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빈곤 속에서 자랐다. 고학으로 학업을 계속한 그는 알제 대학 철학과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했는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 진보적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신문기자로 있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하는 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할만한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유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42년 <이방인>과 1943년 <시지프스의 신화>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1947년 <전투>지 편집장에서 물러나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페스트>를 발표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작품으로 『이방인』『최초의 인간』『페스트』『정의의 사람들』『시지프의 신화』『전락』『반항적 인간』 등이 있다.

 

 

- 그는 내가 사르트르와 함께 20대 초반에 심취했던 소설가였다.-

 

 


 
윗글은 달빛님의 싸이트 날개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카뮈 (Camus, Albert) [1913.11.7~1960.1.4]

   알베르 까뮈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목숨을 잃었다. 삶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까뮈는 심각한 결핵을 극복하고 다양한 직업,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와 기자로 일하면서 계속 철학을 연구한다.


   까뮈의 초기작품들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육감적 행복과 인간조건에 대한 극도의 불안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없다." 라고 까뮈는 적고 있다. 이것은 까뮈가 미래와 천상의 영생보다는 현재, 순간과 대지를 더 우위에 둠으로써 기독교적 가치관을 뒤집어 엎는 출발점을 이룬다. 죽음은 부조리를 자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부조리란 (인간의 부름과 그에 대한 세상의 부조리한 침묵 사이의 상충)에서 기인한다.

 

   소설, "이방인"과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는 이러한 명제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서로서, 이것을 계기로 이러한 명제들은 해방과 함께 자주 제기되는 문제로 등장한다. 까뮈는 레지스탕스 시절에 "전투"지의 편집자였던 만큼 이 두 작품에서 반항을 정당화하고 있다. 맨 먼저 죽음에 도전장을 던지는 이 반항은 인간조건의 현실에 대한 반항이다.

  

   1947년 까뮈는 "전투"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나 문학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파란많은 일대논쟁속에서 "페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반항인"이 발표되는데, "반항인"에서 까뮈는 혁명이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어간다면, 인간은 언제든 그 혁명에도 반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즈음 네 편의 희곡작품, "오해", "칼리귈라",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이 쓰여진다.

 

   까뮈는 그의 (도덕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느 공산주의자들과 실존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리하여 1952년 사르트르, 보봐르와 결별하게 된다.
   까뮈는 이 일로 몹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고독과 상호간의 몰이해와 연관해서 인간의 비참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이방인"의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까뮈는 언어를 초월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언어를 요구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오해가 끼어들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말을 해야만 한다.

 

   아마도 "전락" 역시 사르트르의 결별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야릇하게도 (사르트르적)인 한 등장인물이 적지에서 집요하게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까뮈는 말년의 알제리 내전으로 인해 짙은 먹구름이 깔린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의 심경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까뮈는 입을 다물고, 그 침묵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이제 그 침묵의 원인은 "알제리의 연대기"에서 해명된다. 1957년에 발표된 "유적과 왕국" 이후로 어떤 명쾌한 인도주의를 추구하는 듯이 보였을 즈음, 그는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세계로 인도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닫혀 버리면 그만인 門 이다.. - A.CAMUS-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고 스페인계 어머니는 귀와 입이 부자유스러운 문맹(文盲)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버지가 마른 전투에서 전사하자, 귀머거리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빈곤 속에서 자랐다. 고학으로 학업을 계속한 그는 알제 대학 철학과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했는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 진보적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신문기자로 있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하는 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할만한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유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42년 <이방인>과 1943년 <시지프스의 신화>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1947년 <전투>지 편집장에서 물러나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페스트>를 발표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작품으로 『이방인』『최초의 인간』『페스트』『정의의 사람들』『시지프의 신화』『전락』『반항적 인간』 등이 있다.

 

 

- 그는 내가 사르트르와 함께 20대 초반에 심취했던 소설가였다.-

 

 


 
윗글은 달빛님의 싸이트 날개에서 발췌한 글 입니다.
 

 

  

  카뮈 (Camus, Albert) [1913.11.7~1960.1.4]

   알베르 까뮈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목숨을 잃었다. 삶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까뮈는 심각한 결핵을 극복하고 다양한 직업,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와 기자로 일하면서 계속 철학을 연구한다.


   까뮈의 초기작품들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육감적 행복과 인간조건에 대한 극도의 불안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없다." 라고 까뮈는 적고 있다. 이것은 까뮈가 미래와 천상의 영생보다는 현재, 순간과 대지를 더 우위에 둠으로써 기독교적 가치관을 뒤집어 엎는 출발점을 이룬다. 죽음은 부조리를 자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부조리란 (인간의 부름과 그에 대한 세상의 부조리한 침묵 사이의 상충)에서 기인한다.

 

   소설, "이방인"과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는 이러한 명제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서로서, 이것을 계기로 이러한 명제들은 해방과 함께 자주 제기되는 문제로 등장한다. 까뮈는 레지스탕스 시절에 "전투"지의 편집자였던 만큼 이 두 작품에서 반항을 정당화하고 있다. 맨 먼저 죽음에 도전장을 던지는 이 반항은 인간조건의 현실에 대한 반항이다.

  

   1947년 까뮈는 "전투"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나 문학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파란많은 일대논쟁속에서 "페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반항인"이 발표되는데, "반항인"에서 까뮈는 혁명이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어간다면, 인간은 언제든 그 혁명에도 반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즈음 네 편의 희곡작품, "오해", "칼리귈라",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이 쓰여진다.

 

   까뮈는 그의 (도덕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느 공산주의자들과 실존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리하여 1952년 사르트르, 보봐르와 결별하게 된다.
   까뮈는 이 일로 몹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고독과 상호간의 몰이해와 연관해서 인간의 비참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이방인"의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까뮈는 언어를 초월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언어를 요구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오해가 끼어들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말을 해야만 한다.

 

   아마도 "전락" 역시 사르트르의 결별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야릇하게도 (사르트르적)인 한 등장인물이 적지에서 집요하게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까뮈는 말년의 알제리 내전으로 인해 짙은 먹구름이 깔린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의 심경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까뮈는 입을 다물고, 그 침묵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이제 그 침묵의 원인은 "알제리의 연대기"에서 해명된다. 1957년에 발표된 "유적과 왕국" 이후로 어떤 명쾌한 인도주의를 추구하는 듯이 보였을 즈음, 그는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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