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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깃또리 2020. 10. 6. 13:43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김영하 장편소설

문학동네

2020. 10. 02.

 

 

김영하는 내가 좋아하는 국내 소설가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여러 차례 보았으나 이제야 읽었다. 149 페이지로 보통 두께의 책이지만 좌우상하 그리고 줄간격이 넓고 문단 사이도 네 줄 정도를 비워 중편도 못되는 단편 소설 분량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용이 더욱 중요할테니까.

 

소설 주인공 김병수는 70세로 은퇴한 수의사이다. 결혼을 두 번했으나 자식은 없고 고아원에서 어릴 때 입양한 은희와 함께 산다. 은희는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식물 품종개량연구소 직원이다. 김병수는 이런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15살 때부터 45살 때까지 여러 사람을 살해하여 감쪽 같이 처리하고 심지어 은희 엄마도 그 희생자 중 한 사람이라 하였다. 살인자는 15살 때 술주정과 함께 어머니와 여동생 영숙이를 매일 두들겨 패던 아버지를 왕겨가 든 베개로 목울 눌러 죽인 게 첫 살인이었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의 살인은 어쩔수 없는 정당한 일이었으며 단지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인에 끌어 들인 게 잘못이었다 자책하였다. 왜냐면 당시 혼자 힘으로 어려워 어머니와 동생에게 아버지 다리와 팔을 잡아 달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회상하는 대목 다음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일부가 인용 되어 나온다.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퍽 과격하다.

 

또 프렌시스 톰슨은 "우리는 모두는 타인의 고통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속에서 죽어간다."라는 말도 역시 그렇다.

소설 중간에 오디세우스의 귀환 이야기가 한 페이지 넘게 나온다. 여기에 "현재에만 머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기억을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닌가 한다. 치매, 알츠하이머가 어찌 자신만의 탓일까? 그렇다고 더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지나치다. 더구나 여러 요인으로 최근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 치매를 조금이라도 예방하기 위하여 이렇게 나처럼 책속의 몇 구절을 옮겨보기도 하니까. 또 한가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기원전 750년이나 되는 오래 전인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지은 영웅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빠짐없이 이야기 한다. 읽어야 할 책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우지만 아직도 읽지 않았다. 부담스럽다.

 

김병수 노인이 사는 읍의 문화센터를 드나들며 시 쓰기를 하고 출판사 강권에 못이겨 시집 원고를 보냈다. 잊을만해서 집으로 200권이 도착하고 책값을 송금하라는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책 한 권만 남기고 나머지 199권을 불쏘시개로 썼는데 잘 탔다 한다. 퍽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소설 첫 시작부분에 한 번 그리고 소설 마지막 부분에 김병수가 살인죄로 심문을 받고 비몽사몽속에 무심코 읊조리는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다.

 

"그러므로 공()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의 맛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의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이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으리라." 마침표가 마지막에 하나 있는 긴 문장이다.

 

이 소설을 처음 다 읽고 나는 뭐 이런 소설도 있나! 왜 이런 걸 소설이라고 썼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후기를 쓰려고 첫 페이지부터 넘기면서 요약을 하다보니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이 무심코 읽을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동서양의 철학 세계를 보여주며 다수의 독자들을 만족시켜 베스트셀러가 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작가만이 쓸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하 작가는 이미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있으므로 이렇게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소설을 빛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모처럼 좋은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