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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깃또리 2020. 9. 1. 09:06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Alain De Botton/ 정영목 옮김

이레

 

   국내 작가들의 경우에도 작품 내용은 훌륭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작품 내용에 비하여 인기가 높은 작가도 있다. 해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모국어 독자보다 우리말로 번역되었지만 국내 독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은 작가가 있다. 그런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이 책을 쓴 알랭 드 보통의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팔리는 작가 순위는 마르크 레비, 기욤 뮈소, 카트린 팡콜, 안나 가발다, 프레드 바르가스, 뮈르엘 바르베리, 아멜리 노통,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프랑스 작가 중에서는 1위였다. 프랑스의 1위인 마르크 레비는 원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였는데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들려주려고 소설을 썼는데 예상외의 반응으로 이제는 전업 작가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듯이 알랭 드 보통도 영국에서는 순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인기가 대단하다.

 

   스위스 태생인 알랭 드 보통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하고 영어로 글을 쓰지만 영국에서 보다 우리나라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래서 이 책의 앞표지를 넘기면 한국 독자들을 염두에 둔 Dear Readers, 라는 제목의 영어 인사말 뒤에 한글 번역 인사말이 나온다. 이 글에서 작가는 그동안 인간 활동 중에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랑에 대하여 많은 글을 썼지만 이번엔 또 다른 면에서 의미 있고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에 대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사랑은 결혼과 행복을, 일은 돈과 만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번번이 이 두 가지에서 실망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인사말 끝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새집을 얻는데 한국어판 인세가 도움을 주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자신과 한국 독자가 단순히 경제적 관계라는 것만이 아니고 글을 통하여 상상의 우정을 맺고 있다 하였다.

 

우리나라 독자들을 배려하여 책 곳곳에 한국과 관련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넣었다고 나는 생각하기도 하였다. 먼저 책 첫 페이지부터 런던시내를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온 관광객을 언급하였고 항구에 짐을 잔뜩 싣고 들어온 화물선이 한국 국적선이고,, 고압 송전철탑 디자인 모음집이 한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이라는 것, 한반도 울산공장에서 출발하여 20일 항해 끝에 도착한 3천여 대의 패밀리 세단 현대 ‘아미카’ 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그런 데로 괜찮았으나 249페이지에 SAMSUNG 이란 큼지막한 광고판에 TV를 세일한다는 Show Window 앞에서 제품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한 외국 여성 사진은 책의 앞 뒤 페이지 글과 별 관련이 없기도 하여 지나친 친절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공은 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할까.

 

이 책은 넓은 의미에서 에세이라 할 수 있고 좁은 의미에서 몇 달에 걸친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한 일에 대한 관찰기록인 동시에 작가의 느낌을 적은 르포 형식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대상으로 삼은 열 가지 일은<화물선 관찰하기>,<물류>,<비스킷 공장>,<직업 상담>,<로켓 과학>,<그림>,<송전 공학>,<회계>,<창업자 정신>,<항공 산업>이다.

 

세 번째 <비스킷 공장>에서 작가는 자신이 읽은 책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가톨릭 사상과 프로테스탄트 사상은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처음부터 달랐으며 가톨릭 교리에서는 고귀한 일은 신을 모시는 일이고 상업적 노동은 저급한 일로 간주하였으나 프로테스탄트의 세계관은 일상적인 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의 영혼도 고귀하다고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근본적인 사고가 영향을 주어 유럽에서도 가톨릭 국가에 해당하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이 프로테스탄트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등에 비하여 생활수준이 조금 떨어지며 가톨릭 성향인 남미국가들도 대략 비슷한 상황으로 경제적인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보아 원래 한 나라였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분리된 카톨릭인 벨기에와 프로테스탄트인 네덜란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조금 다르고 생활수준이 차이가 나는 것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으로 일곱 번째<송전공학>으로 보았다. 작가가 만난 스코틀랜드 어느 전력회사에 다니는 이언이라는 사람은 송전철탑 건설기술자이며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송전탑 평가회를 만들어 철탑의 디자인을 연구하고 평가한다. 세계의 이곳저곳 철탑을 보기 위해 일본, 남아프리카까지 여행하기도 하고 휴가를 이용하여 철탑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걷기도 한다. 작가는 그를 따라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송전선 가운데 하나인 켄트 해안 핵발전소에서 시작하여 런던 동부 변전소까지 송전철탑을 따라 이언과 함께 도보여행을 하였다. 여행 중에 이언은 최근 15년 함께 살았던 아내가 갑자기 자신을 버리고 떠나 이혼에 이르렀다고 고백하였는데 철탑을 따라 돌아다니느라 사이가 나빠졌는지? 아니면 사이가 나빠지다 보니 철탑을 따라 돌아다니는지?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궁금하다. 이언이 첫 데이트에 애인 미건을 토니스 발전소와 에든버러 외곽을 잇는 송전선 밑으로 갔을 때 고압전류가 흘러 딱딱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는 철탑 밑에서 첫 키스를 했다 하는데 아무리 송전철탑이 좋아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데이트 초기에 철탑 밑으로 데려가 철탑 주위의 공기는 전기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작은 전기장치를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현상을 보여 준다고 차 뒤에 실어 놓은 형광등을 꺼내 와서 공중의 전기를 끌어당겨 깜빡거리게 했다니 이 또한 지나친 철탑 사랑으로 보여 이혼을 하고 떠난 아내를 탓할 일이 아니다. 결국 일과 가정 중에서 어느 곳에 사랑을 쏟아야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적절한 배분이 현명하겠지만.......

 

송전선은 여러 개의 전선으로 구성되었는데 7가닥 알루미늄 케이블은 양귀비, 19가닥은 월계수, 37가닥은 히아신스, 61가닥은 금잔화(메리골드), 127가닥은 수레국화(양취란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하는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송전선을 보며 일하는 기술자들에게는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합당한 이름들이겠다고 생각한다. 빛과 전기의 속도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데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 (299,792,458미터)로 달까지 약 1초 태양까지는 약 8분이 걸린다 한다.

 

여덟 번째 <회계>라는 소제목에서 런던의 어느 대형 회계사 사무소의 한 여성의 아침 기상에서부터 저녁 취침까지를 관찰하여 쓴 일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회계사사무실 직원이 55천 명이고 이 회사 사무실의 의자를 수리하고, 문구를 준비하고, 인원을 관리하는 지원부서 직원만 200명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전 세계의 기업과 조직을 상대로 하는 사무실이겠지만 그 방대한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하 문구점에 준비된 하이라이트 펜만 3천 자루 보관되었다 한다. 우리 사무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무실 3층의 싸인 펜은 아마 30자루 정도가 아닐까 추측된다. 이 회사는 회계감사, 세금, 금융, 자본시장, 부동산, 위험자문서비스 등으로 부서가 나뉘었으며 4천 페이지에 달하는 <세계감사방법론 Global Audit Methodology>을 감사업무의 성서로 삼아 일을 처리하고 심리상담사, 세탁소운영, 정보기술책임자, 남녀동성연애자협회 운영 등과 온천에서 치료와 마사지도 받게 하며 런던 외곽 우아한 호텔에서 회식도 하는 기회도 마련되는 등 직원들을 위한 여려가지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가 사장을 어렵게 섭외하여 30분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사장은 권위를 나타낼만한 도구와 상징을 모두 버리고 호칭조차 성도 아닌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했으며 전용 제트기나 운전기사도 없을 뿐 아니라 기차로 출근하며 비서도 다른 임원과 함께 쓰며 심지어 전용사무실도 없이 인턴직원과 같은 종류의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다. 더욱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책상 칸막이 위에 코팅되어 붙어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일부 발췌한 문구였다 한다. 모두가 탁월한 수준을 향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만일 실패해도, 적어도 과감하게 큰일을 하다가 실패했으니, 그의 자리는 승리나 패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차갑고 소심한 영혼들 사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장은 <항공 산업>이었다. 항공기와 부품판매를 위한 전시장을 관찰한 기록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엔진 제조업체 부스에서 유난히 매력적인 영업사원에 끌려 몇 분을 서성이며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고백하였다. 파는 쪽에서 의도적으로 자꾸 여성의 매력에 의존하는 것이, 물품을 구매하면 그 여사원과도 더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암묵적 암시를 통해 잠재적 구매자인 항공사 임원들의 마음을 얻어 보려는 천박한 전략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 문제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큰 이익을 남기는 주문을 하더라도 실제로 구매자가 이 여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니 여자들이 부스에 있는 것은 더 통렬하고 상업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여자들의 진짜 기능은 중년의 곤경에 처한 표정의 남성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고객들에게 아름다움이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이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모든 낭만적인 야망은 옆으로 밀어 두고 사업과 기술적 사안에만 초점을 맞추라고 몰아 대고 있었다. 이들은 유혹하는 여자들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키라고 자극하는 존재들이었다. 구매자들이 전시장에 놓인 정밀하게 제작된 수천가지 장비에 집중을 하려면 잊어버리는 것이 훨씬 좋을 모든 것을 상징하는 셈이었다.” 작가다운 치밀한 통찰력에서 나온 생각 같아서 나는 탄복하였다.

 

작가가 L. A.시 외곽에서 길을 잘못 들어 할 수 없이 사막 한가운데 도시 모하비 시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어 삭막한 시내 구경을 하다 폐차장과 목적이 비슷한 폐 항공기 계류장을 보게 되어 가까이 구경하려다 관리인의 거친 제지를 받은 후 자신의 호기심과 근원적인 폐 항공기 관람에 대한 욕구를 독백으로 남겼다. 반 쯤 파괴된 대상들을 더 조사하고 싶은 나의 욕망은 그 성격이 개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붕괴하는 문명의 잔재에 몰두하는 오랜 서양 전통과 통하는 것으로, 그 기원은 멀리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괴테를 포함한 수많은 폐허 구경꾼들이 이탈리아 반도로 달려가 달빛을 받는 고대 로마의 잔재를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때 웅장했던 궁궐과 극장이 이제 잡초로, 또 피난처를 찾는 이리나 들개로 덮여 있는 광경을 보고 위안을 얻었지요. 복합어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능숙하기 짝이 없는 독일인은 이런 새로운 취미를 묘사하려고 ‘루이넨루스트 Ruinenlust' , ’폐허에서의 기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 사회가 발전할수록 파괴된 것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그들 자신의 성취의 덧없음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고 구원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폐허는 권력과 지위, 소란과 명성을 향한 우리의 욕망과 정면으로 충돌하지요. 폐허는 있는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부를 추구하는 우리의 풍선 같은 어리석음에 구멍을 냅니다. 따라서 미합중국, 현대의 모든 사회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발달한 이 사회를 찾아온 사람이 이 나라의 발전의 뒷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당신 창밖으로 보이는 부서져가는 콘티넨탈 에어 라인즈 747은 젊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이 본 로마의 콜로세움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우리들의 시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기간을 구분해보면 잠자기, 일하기, 식사하기, 휴식 및 오락, 사랑하기 등이다. 여기서 가장 긴 잠자기는 의식 부재의 시간이므로 제외하기로 하고 가장 긴 시간이 일하기이다. 일에 따른 수입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인간에게 일하기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사랑이 중요한들 평생 사랑으로 시간을 다 보낼 수 없으며 대단한 진수성찬도 배가 부르면 그만이다. 또한 오락과 휴식도 지나치면 식상하지만 우리에게 일은 삶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인 일에 대하여 우리들은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글로써 사실 제목이 주는 기대에 비하여 내용은 그리 진지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여러 분야의 일을 기웃거려 볼 수 있었으며 아울러 나의 삶 속에 과거 내가 해온 일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한국의 남자들에게 일은 사랑보다도 더 중요하고 어쩌면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타 복잡한 개인사정이 있겠지만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된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일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렇다고 여성들에게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